대선에서 승리한지 불과 두 달여만에 당 내부가 난장판이 된 국민의힘에는 불명예스러운 ‘전통’이 있다. 여당이 되면 어김없이 대통령을 둘러싼 친위대 성격의 ‘권력실세’들이 반대파를 공격하며 내부권력 다툼에 몰두하느라 애써 되찾은 정권 전체를 위기로 내모는 ‘자폭의 역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권한 2016년 발생한 이른바 ‘옥새 파동’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던 그해 3월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여론조사 비중을 크게 높인 ‘상향식 공천’으로 총선에 임해야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당초 완전 국민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을 통한 공천 혁신을 주장했지만 ‘친박’의 거센 반발에 밀려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당시 김 대표는 공천관리위원장 자리를 청와대를 등에 업은 친박 이한구 전 의원에게 내주는 등 힘이 없었다. 이 공관위원장이 “당 대표도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한다”며 김 대표를 몰아세울 정도였다. 이 위원장은 ‘비박’으로 분류된 유승민·이재오 전 의원의 지역구에 경선을 실시하지 않고 공백 상태로 둔 채 김 대표에게 추천장을 보내 서명하게 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공관위 추천장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며,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되는 3월 25일 저녁까지 최고위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직인을 갖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광역시 영도구로 내려가 버렸다. 선거법상 후보자 추천장에는 당인과 함께 당대표의 직인이 찍혀야 한다. 최고위나 원내대표 등이 임의로 직인을 찍으면 불법이 되고, 설령 당선된다 해도 무효 처리가 된다.
압승이 예상됐던 새누리당은 패했고, 당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MB) 시절도 비슷하다. MB의 고향인 경북 영일·포항 출신인 ‘영포라인’에 힘이 쏠렸다. 대표적인 인물이 MB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등이다. 당내(한나라당)에서는 ‘친이’계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공천에서 경쟁자인 친박계를 대거 배제해 이른바 ‘공천 학살’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홍사덕·김무성·서청원 등 친박 중진은 물론 김재원 전 의원 등 소장그룹도 줄줄이 희생양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고 친박 의원들은 탈당 후 ‘친박연대’로 출마해 14석을 차지했다. 18대 총선의 공천 학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 대표에 오르면서 친이계에 부메랑으로 돌아갔다. 4년 뒤인 2012년 총선에서는 반대로 ‘친이 학살’ 공천이 진행됐다.
이렇듯 국민의힘에서 대통령을 둘러싼 세력과 당 대표가 충돌하는 권력 투쟁은 십수년째 이어지는 전통아닌 전통이다. 정치권은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만 충성할 뿐 당내 권력인 대표를 존중하지 않는 ‘보스 정치’를 지목한다. 권력을 당원들이나 지지층에서 얻는 대신 대통령의 ‘총애’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획득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당 한 관계자는 “선거때만 되면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내걸지 않느냐”면서 “대통령을 내세워 하극상을 마다하지 않는 문화가 뿌리내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