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리더십 부재에 ‘늘공’ 뿐인 위기의 尹정부 "다 바꿔야"
관료구성 개혁·취약계층 집중 지원·기업환경 개선 이뤄져야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첫 4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
"금융위기 이후 주식 보유량 최저치"
대한민국 경제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현실화 되고 있는 시그널이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5일 국무회의에서 "직접 민생 현장 나가고, 매주 비상경제민생회의 주재하겠다"고 공언했다. 윤 대통령은 8일부터 매주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해오고 있다. 8일 첫 회의에서는 '물가 안정', 14일 2차 회의에서는 '서민 금융', 20일 회의에선 '서민 주거 안정'을 논의했다. 또 일부 부처 장관들은 "현장에서 뛰라"는 대통령 지시에 당일 일정도 취소하고 지방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다만, 이는 취임 2달이 훌쩍 지나서야 내린 결단으로 지금같은 위기 상황에선 다소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투데이는 21일 이같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전문가들에게 과거 외환위기, 금융위기 당시 고(故) 김대중(DJ), 이명박(MB) 대통령의 위기 대처는 물론 윤 대통령의 위기 대응 현주소, 향후 가야할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등 4명이 제시한 진단과 제언이다.
전문가들은 경제 위기를 대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아쉬운 점으로 철학과 리더십 부재, 대거 포진해 있는 이른바 ‘늘공(늘 공무원)’ 등을 꼽았다.
우 교수는 "철학과 리더십이 없는 정부다. 철학은 인수위때부터 만들어져야 하지만, 그때부터 구체화되지 않아 준비가 거의 안됐고 집무실 이전에 힘을 다 쏟아버렸다"며 "게다가 경제팀이 늘공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은 본능적으로 책임을 지기보단 위기를 덮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수십년간 반복된 실수를 공무원들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관료는 같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임명될 뿐 아니라 배경도 비슷해 전문성과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한덕수 총리는 참여정부 시절에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시절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겸 비상경제상황실장을 지냈으며 박근혜 정부 들어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을 역임했다. 성 교수는 "경제 위기상황에서 전문가 집단의 역량 발휘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사실상 동일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경제 관료집단이 형성돼 있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대책이 실종된 점도 문제다. 우 교수는 "최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표한 서민금융대책을 살펴보면 대책만 쏟아놨지, 재정이 없다. 어떻게 예산을 마련할지에 대한 계획이 부재하다는 것"이라며 "대환대출, 만기연장 등 모두 은행에게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외엔 없다"고 꼬집었다.
외환위기 당시 DJ 정부는 1998년 총 12차례에 걸친 경제대책조정회의를 열었다. 구체적으로 3월11일 'IMF 체제 극복을 위한 과제와 물가대책', 3월17일 '원자재 수급 애로 해소 방안', 열흘 뒤엔 '실업 문제 해결 위한 종합대책', 4월14일 '금융기업 구조개혁 방안' 등 사안별 집중 논의가 이뤄졌다.
당시 DJ는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에 다양한 위기를 극복하는데 한 몫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미국 의회에서 직접 연설을 통해 "나를 봐서 보증을 서달라"며 외채 만기 연장을 이끌었다. 국익 외교를 펼쳤다는 것이다. 또 당시 뼈를 깎는 노동시장 구조조정 과정에서 갈등을 봉합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신관호 교수는 "당시 노동자들이 피해를 많이 본 상황에서 상당히 불만도 많았을텐데 DJ는 큰 갈등이 생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회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MB는 위기관리대책회의를 거의 매주 열었다. 2008년 16차례, 2009년 30차례, 2010년에는 무려 36차례 열렸다.
물론 외환위기 보단 쇼크가 덜했고 기간도 짧아 한 분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MB의 리더십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우 교수는 "MB가 수시로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다니며 공무원들에게도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요구했다"며 "그래야 재원 마련 시점과 방법, 실행 등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물가를 잡기 위해 50여개 품목을 선정해 담당 공무원들까지 지정하며 'MB물가지수'를 만들었다. 다만, 효과는 입증되지 않아 오래가진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인적 구성 △기업 환경 개선 △취약계층 집중 정책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세돈 교수는 "적어도 지난 30년간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묵은 칼(한덕수·추경호 등)이 아니라 새 칼(사람)을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경제를 이끈 주인공인 기업들이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부가가치세를 대폭 인하해야 한다"며 "정부가 내놓은 법인세 인하안은 효과가 대기업에 집중돼 불공정하다는 지적도 있다"고 했다.
우 교수는 "지금같은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타깃된 재정정책, 특히 취약계층, 취약차주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데, 정부가 내놓은 방안에는 재원 마련 방안이 없다"고 했으며, 신관호 교수 역시 "가장 취약 계층에 대해선 지원책을 마련하고,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은 계층은 양보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