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하도급' 관행 숙제로…이제 '노사의 시간' 지나 '민·형사의 시간'
51일간 이어진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소속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파업이 노사 합의로 마무리됐지만, 남은 과제가 산적하다. 조합원들의 도크 점거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민사·형사 절차가 남아 있고, ‘진짜 사용자’로 지목된 대우조선과 대주주 산업은행은 아예 협상 과정에서 빠져서다. 파업은 끝났지만, 언제든 민·형사처분 결과와 다단계 하도급을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임금 4.5% 인상…대우조선·산업은행은 뒷짐
대우조선 사내협력사협의회와 하청지회는 22일 임금 4.5% 인상, 명절 휴가비 50만 원, 여름휴가비 40만 원 지급 등을 골자로 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달 2일부터 51일째, 22일부터 31일째 이어진 파업과 토크 점거도 종료됐다.
하지만 원청인 대우조선과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교섭 과정에서 빠졌다. 특히 산업은행은 이번 파업과 조업 차질로 발생한 피해에 대에 추가 지원은 없다는 입장이다. 도급단가가 인상되지 않는 이상 근로자 인건비 100%를 도급대금으로 충당하는 하청업체로선 자력으로 합의안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 노 측은 이를 이유로 교섭에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이 나설 것을 촉구해왔지만, 대우조선은 원청과 하청 노조의 교섭을 ‘불법’이라 주장하며 거부해왔다.
대우조선은 하청업체 수만 100개가 넘는다. 조선업계 특성상 수주·건조량에 따라 업무량 편차가 커 일이 몰릴 땐 일명 ‘물량팀’ 형태의 하청업체가 단기적으로 업무에 투입된다. 그런데 1차 하청은 원청의 도급대금으로, 재하청업체는 1차 하청의 도급대금으로 인건비를 충당한다. 최종 하청 근로자들은 경제적으로 원청에 종속돼 있지만,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은 ‘경제적 종속성’이 아닌 ‘사용자 종속성’만을 따진다. 이런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하청 근로자들은 권한 업는 하청 사업주에게만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협상이 타결된 후 법무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합동으로 발표한 입장문에서 이정식 고용부 장관의 이름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도 밀린 세 번째였다. 이번 사태를 잘못된 하청구조보단 노조의 불법행위로 바라보겠다는 방증이다.
◇‘노사의 시간’ 뒤 ‘민·형사의 시간’
정부는 22일 입장문에서 “이번 불법점거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경찰은 업무방해 등 혐의로 대우조선이 고소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하청지회) 집행부와 조합원 9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대우조선은 파업 기간 매출 피해 6468억 원, 고정비 피해 1426억 원, 지차보상금 271억 원 등 총 8165억 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자체 추산하고 있다.
다만,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24일 이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기각했다. 노사 합의가 원만히 이뤄진 뒤 농성이 끝났고,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가 악화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노동자들의 건강이 회복되 는대로 출석 일정을 조율해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사태가 원만히 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청 노사 교섭에서도 ‘민·형사상 면책’에 대해선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