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정부다. 부처명에는 기관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상당수는 국토·교통, 보건·복지, 고용·노동, 산업·통상·자원 등 복수 기능을 수행한다. 정권에 따라 중심정책이 달라지긴 하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윤석열 행정부는 각 부처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노사분규 해결에 고용노동부가 아닌 법무부와 행정안전부가 앞장서고, 방역정책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아닌 민간전문가들이 결정한다. 환경부는 ‘탈원전 백지화’를 주도한다. 경찰은 치안정책과 조직·인사 재량권을 비경찰 출신 행안부 장관에게 반납해야 할 처지다. 대통령실과 장관만 존재하는 행정부에서 관료조직으로 대표되는 정부는 역할이 없다.
둘째, 공감능력이다. 최근 대통령 지지도 급락 원인으로 당·청은 ‘국정홍보 미흡’을 지적하고 있다. ‘자율방역’을 추진한다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치료부담을 높이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선 청년층의 이자를 깎아주고,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서 저소득 고령층의 주요 소득원인 노인일자리는 줄이겠다는 게 현 정권이다. 교육부·복지부 장관, 대통령실 행정요원 논란으로 대표되는 ‘인사 참사’는 덤이다. 국민이 정권에 등 돌린 원인은 이런 공정성·형평성에 어긋난 정책 추진과 인사 참사, 모든 비판에 ‘전 정권’을 끌어들여 정당화하는 태도인데, 당·청은 미흡한 홍보와 언론의 왜곡을 탓한다. 국민이 ‘제대로 된 사실을 몰라서’ 정부를 비판한단 거다. 결국, ‘개돼지론’의 연장선이다.
셋째, 비전이다. 현 정권에서 ‘전 정권’은 모든 비판에 대응하는 만병통치약이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좋은 정책을 계승하고 잘못된 정책은 수정·보완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현 정권은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전 정권의 정책들을 일괄적으로 폐기하면서 잘못된 관행은 ‘전 정권도 그랬다’는 명분으로 답습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정부, 어떤 나라를 만들겠단 건지 모르겠다.
부처 기능·역할에 대한 이해·존중과 국민에 대한 공감능력, 비전 제시는 다른 것을 잘해 대체·보완할 수 있는 덕목이 아니다. 국정운영의 필수이자 기본이다. 기본만 잘해도 절반은 성공한다. 완벽한 정권을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절반이라도 성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