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여름 휴가 동안 지방에서 업무를 벗어난 휴식을 보내겠다는 계획을 돌연 취소했다. 국정 운영 지지율이 20%대까지 하락하고, 여당 내 당파 싸움, 인사 문제 등을 휴가 기간 다시 살피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휴가 중 지방에 가지 않고 서울에 머무르며 정국 구상을 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애초 2~3일 정도 지방에서 휴가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지만 최종적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에 머물며 향후 정국 구상을 하거나, 산책하면서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30% 선이 무너진 데다 여권 내에서 대통령실에 대한 쇄신 요구가 나오면서 정국 구상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윤 대통령의 휴가에 대해 “국민이 대통령에 대해 취임하고 무슨 일 같은 일을 한 게 있다고 일은 생각도 하진 않는 휴가를 간다고 하느냐 생각할 것”이라며 “휴가를 통한 메시지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아무래도 윤 대통령이 휴가철에 움직이면 해당 지역에서 휴가를 즐기는 분들께 폐를 끼칠 수도 있어 여러 가지를 고려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여름휴가에 앞서 김대기 비서실장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 상황과 휴가철 치안, 추석 물가 불안 우려 대응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휴가는 보장돼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 북핵 위협과 한일 무역 분쟁, 코로나19 등 위기 상황이 이어지면서 2019년부터 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다.
통상 대통령은 보장된 연차를 대부분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차 사용을 독려한 문 전 대통령도 5년의 재임 동안 연평균 5.4일을 사용했다.
더 앞서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6년 수해 발생으로 휴가 간 지 하루 만에 복귀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외환위기 대처와 두 아들의 비리 연루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로 해당 연도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다른 나라들도 중대한 사안이 생기면 휴가가 취소되거나 휴가 중 업무를 보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여름휴가를 계획했으나, 코로나19 확산과 대규모 인프라 법안의 의회 처리로 일정이 계속 바뀌다가 8월 말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흐지부지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주말을 이용해 자신의 고향이자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북부 윌밍턴과 인근 레호보스 해변의 별장에서 짧은 휴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휴가 계획을 공개하지 않지만, 8월 초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 참석해 휴가를 겸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다이허는 베이징 동쪽 해안을 낀 휴양지로,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매년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다. 이곳에선 대내외 현안과 정책, 인사 등을 논의하는 비공개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리는데, 시 주석은 전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휴가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유럽의 정상들은 길게는 3주 동안 휴가를 떠난다. 2월 개전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행 중이지만, 유럽 정상들이 휴가를 반납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국정 구상이 휴가에서 비롯된다는 통념이 있어서다.
특히 휴가를 중시하는 유럽 대륙에서는 3주간의 긴 휴가가 낯선 일이 아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나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의 휴가는 3주 이상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구체적 휴가 일정도 없이 세간에서 사라졌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휴가지가 어디인지, 그 기간에 읽은 책이 무엇인지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반면 유럽 주요 국가들은 정상의 휴가지를 프라이버시로 취급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콧 모리슨 호주 전 총리처럼 휴가권을 강조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일도 있다. 모리슨 전 총리는 2019년 하와이로 휴가를 떠났을 당시 호주에 큰 산불이 발생했는데도 휴가를 즐기다 악화한 여론에 등 떠밀려 귀국한 뒤 사과 성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