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에는 니카라과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의 수교 재개를 선언했다. 1990년 중국과 단교한 이래 31년 만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2017년 파나마, 2018년 도미니카공화국과 엘살바도르가 차례로 대만에 등을 돌리고 중국과 수교를 맺은 것에 이은 외교적 쾌거였다. '하나의 중국' 정책 확산의 핵심 지역으로 꼽히는 중남미에서 카리브해 국가를 제외하면 과테말라, 온두라스, 파라과이만이 대만 수교국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어 지난 2월에는 중남미 3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가 중국 시진핑 주석의 역점 대외사업인 일대일로에 협력하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중남미에서 경제규모가 10위권 안에 드는 국가 중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만이 현재 일대일로 참여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중국의 대중남미 협력 강화 행보가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드러난 것은 아니다. 중국과 중남미가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 이때부터 무역에서 중남미 국가의 중국 의존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고, 2020년에는 중남미 18개국의 총 수입 및 총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20%와 13%에 달했다. 유엔의 세관통계 데이터베이스(UN Comtrade)를 재구성해 계산한 결과다. 중국이 역내 자원부국으로부터 석유, 광물, 농산품을 수입해 오고 대부분 국가에 공산품을 수출하는 전형적인 무역구조가 고착화된 지 오래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중남미 국가에 막대한 자금도 빌려주고 있다. 국책은행인 중국수출입은행과 중국개발은행이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중남미 10개국의 정부와 산하 국영기업에 연평균 120억 달러 가량의 정책금융을 제공했다. 미국 싱크탱크 미주대화(Inter-American Dialogue)와 보스턴대학교가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계산한 액수로 이는 세계은행과 미주개발은행이 같은 기간 제공한 정책금융 액수를 합한 것보다도 큰 것으로 추산된다.
내정 불간섭 원칙에 따라 정책 조건없는 중국의 정책금융은 서방 국가 주도의 다자금융기구가 제공하는 정책금융에 접근이 어려웠던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등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중국이 중남미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역외 세력으로 급부상하는데 정책금융이 핵심 도구로 활용된 셈이다. 게다가 자금을 대준 사업이 문제없이 진행되면 높은 대출이자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사업에 차질이 생겨도 담보로 설정돼 있는 주요 원자재에 대한 접근권 행사가 가능했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든 경제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었다.
중국은 정부 소유의 공기업 주도로 현지 기업을 인수하거나 자국 기업과 합병하는 방식의 투자 역시 중남미에서 활발히 진행해왔다. 멕시코의 중국 연구자 네트워크(RED ALC-CHINA)가 제공하는 자료를 재구성해 계산해 보면, 중남미 18개국을 대상으로 한 중국 기업의 인수합병 투자액은 2006년에서 2021년 사이 연평균 75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핵심 원자재 확보라는 국가 차원의 목표가 있었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이 직접 현지 법인을 설립해 투자하는 경우도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인프라 부문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 조짐이 보인다. 중국원양운수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30억 달러 규모의 페루 찬카이 항구 건설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업의 투자를 통한 중국의 현지 침투가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중국이 중남미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먼저 경제적 요인을 들 수 있다. 석유, 광물, 농산품 등의 확보와 수출 시장 확대에 있어 중남미는 핵심적인 지역이다. 하지만 중국의 대중남미 협력 활동이 지정학적 목표 역시 투영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는 중남미에서 미국을 견제하고 대만을 고립시켜 새로운 역내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구상이다. 중국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가용한 경제적·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중남미에 전략적·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이 점점 더 자명해지고 있다. 우리 대중남미 정책의 큰 숙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