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1일 전라북도 고창의 상하농원을 찾았다. 끈적이던 공기는 40피트 규모의 냉동 컨테이너에 들어서자 삽시간에 시원하고 상쾌해졌다. 내달 정식 오픈을 앞둔 스마트팜 사업 '버섯동'이다. 양 옆 선반에는 울긋불긋한 적록색 조명 아래 버섯 배지 1000개가 자라고 있었다.
이승표 상하미래연구소 식물연구팀 과장은 “내부온도는 4~8도를 유지하고 있고 생육 시기에 따라 온도 편차를 주고 있다"라면서 "1개 버섯 배지에서 4개월 동안 3회 수확할 수 있다. 최소 1회 수확 시 약 100g이다. 이 버섯동에서만 연간 900㎏ 버섯을 수확할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이후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먹거리 산업에선 '푸드 마일리지'라는 개념이 대두했다. 푸드 마일리지는 식재료가 우리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의 거리다. 생산자 손에서 소비자 입으로 들어가기까지 거리가 멀수록 탄소를 많이 배출하게 돼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면 이 거리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특히 식량자급률이 낮고 수입 먹거리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푸드 마일리지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는 환경부가 2012년 ‘식품 수입에 의한 푸드 마일리지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산정 결과’ 자료를 바탕으로 2019년의 국민 1인당 수입식품에 대한 탄소배출량이 약 1100만 톤이라고 추산했다. 국내 농업 분야(국산+수입) 전체 탄소배출량 2100만 톤 가운데 수입식품의 탄소배출량이 45%를 차지하는 셈이다.
약 3만 평 규모의 고창 상하농원은 '푸드 마일리지' 최소화의 최전선이다. 이곳에서 접하는 대부분 먹거리는 오로지 상하농원에서 나고 자란 것들이다. 상하공장 인근 20여 개 농가와 협약을 맺어 유기농 우유와 치즈를 생산하고, 빵, 과일, 햄, 발효, 참기름 공방(오픈 예정) 등 총 5개 공방에서 직접 생산한 식재료들이 상하키친(양식당), 상하농원식당 등의 식탁에 그날 그날 오른다.
지역 농가와의 상생 전략도 푸드 마일리지 단축에 효과가 있다. 상하농원은 유기농 우유 농가 20여 개를 포함해 총 50여 개 농가와 협력해 로컬 농산물을 직접 진열, 판매하고 있다. 입구 매표소에 함께 있는 ‘파머스마켓’에는 지역 농부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되는 게 특징이다. 올해 10월 핼러윈 행사에는 호박 농가와 계약 재배를 통해 공급된 호박으로 핼러윈 장식뿐만 아니라 시즌 요리체험 재료, 식음 매장 재료로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이 아끼기로 정평이 난 상하농원은 2016년 농어촌 체험형 테마공원으로 출범한 이래 ‘짓다-놀다-먹다’를 콘셉트로 사업 범위를 확장해왔다. 젖소, 양, 개 등 동물을 볼 수 있는 체험공간뿐 아니라 최근 100억 원을 들여 호텔 '파머스 빌리지'와 스파, 수영장까지 건립했다.
상하농장이 푸드 마일리지 최소화 방침을 내건 배경에는 '6차 산업' 육성 전략이 자리한다. 딸기를 심고 수확하는 게 1차, 수확한 딸기 잼을 만들어 가공하고 파는 게 2차, 이를 상하농원 내부 커피숍과 호텔 조식에 제공하는 걸 3차라고 할 때 이 모든 걸 융합한 결과물이 6차(1+2+3) 산업이라는 의미다. 단순 생산에 머물렀던 농업(1차 산업)에서 나아가 가공(2차 산업)과 유통, 서비스, 관광(3차 산업)을 접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농촌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기 위한 한국형 6차 산업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설명이다.
다음달부터는 상하농원이 역점사업으로 하는 스마트팜을 정식 오픈한다. 지난해부터 딸기 품종에 한해 시범으로 운영해온 사업이 베리굿팜, 아쿠아팜(채소를 재배한 물로 물고기를 키워 재사용하는 곳), 큐브팜(버섯 등을 재배하는 수직형 스마트팜)으로 확장돼 안착할 예정이다. 물을 재사용하고 노동력을 효율화하는 등 푸드 마일리지를 한층 더 단축하는 전략이다.
류영기 상하농원 대표는 "친환경 사업은 돈이 들기 마련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상하농원은 농가와의 상생을 꾀하고 직접 먹거리를 생산ㆍ유통하는 곳으로서 비즈니스 잠재력이 큰 사업모델이라고 본다"라면서 "실제 매출이 매년 60%씩 늘어나며 적자 폭도 줄어들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상하농원 한 쪽에는 사람 키보다 큰 거대한 퇴비 둔덕이 쌓여있었다. 커피박 찌꺼기와 분뇨 등을 섞은 친환경 퇴비다.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퇴비 특유의 악취는 전혀 나질 않았다. 류 대표는 "건강한 풀을 먹고 자란 상하농원 소들의 분뇨와 톱밥, 커피박을 섞은 비료"라면서 "손으로 만져도 될 정도다. 커피냄새도 좀 난다"라고 했다.
상하농원에는 매주 2~3회씩 전국 폴 바셋 매장에서 버려진 커피박 찌꺼기가 배달된다. 상하농원이 자랑하는 자원의 선순환 구조 ‘오가닉 서클’의 일환이다. 이곳에서는 친환경으로 자란 젖소의 분뇨와 폴바셋에서 나오는 커피 찌꺼기를 활용해 퇴비를 만들고, 퇴비를 이용해 젖소들에게 먹일 건강한 사료를 만들어 사용한다.
농업과 어업 분야에서도 오가닉 서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령 딸기 스마트팜에 장어 양식을 결합해 장어에서 나오는 유기물을 딸기재배에 퇴비로 사용하는 식이다. 원래는 버려졌어야 할 물을 다시금 딸기 재배에 재활용함으로써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구현하고 있다.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시설 중 하나인 식음 매장 역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자원의 업사이클링을 위해 생분해성 재활용 컵을 사용하고 있다. 생분해성 재활용 컵은 일반 플라스틱 컵과 비교하면 가격은 높지만 토양에서 자연분해되기 때문에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불린다.
친환경에 앞장서는 상하농원은 생분해성 재활용 컵을 사용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수거한 재활용 컵을 세척해 ‘리사이클 화분 만들기’라는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서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친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 있다.
상하농원은 현재 기존 3만평 부지를 약 6만 평으로 2배 넓히면서 ‘상하의 숲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상하의 숲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환경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탄소의 선순환을 위해 숲을 조성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광합성을 통해 식물이 대기로부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함으로써 숲의 산소 포화도를 높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