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던 8일 오후 9시경 서울 강남구 대치사거리에 있던 친언니 차의 시동이 갑자기 꺼졌다. 도로에는 물이 차기 시작했다. 3시간여를 차에 갇혀 있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탈출했지만, 엔진에 물이 차 침수차 판정을 받았다. 대형 손해보험사들은 11일부터 서울대공원 주차장을 임차해 침수 차량을 관리하고 보상 처리하고 있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에서 만난 차는 진흙과 물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차에 있는 짐을 챙긴 언니는 그날의 트라우마로 비 오는 날 운전이 두렵다고 했다.
115년 만의 폭우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에 살던 장애인 가족은 목숨을 잃었다. 도로 한복판 차 안에서 물이 차도 무서운데 반지하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4일 오전 11시 기준, 전국에서 2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이재민도 1901명 발생했다. 앞으로도 시간당 50㎜의 강한 폭우가 전국에 순차적으로 내릴 예정이어서 피해 확산이 우려된다. 국가적 재난 수준의 폭우로 불가항력적 측면은 있지만, 기상청이 예보한 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대처가 부족했던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폭우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해 대심도 빗물저류 배수시설인 ‘빗물터널’ 사업을 다시 추진한다고 10일 발표했다. 2011년 7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광화문과 양천구 신월동, 강남역 등 상습 침수 지역 7곳에 17조 원을 들여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 확충 등의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오 시장이 물러나고 2011년 10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며 대폭 수정돼 신월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만 완료됐다. 오 시장은 빗물터널에 앞으로 10년간 1조5000억 원을 투자하는 등 총 3조 원을 들일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날 ‘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내놨다. 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는 전면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는 최장 20년 이내 없애도록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추진한다고 한다.
빗물터널을 만들고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시간과 예산을 들여 추진되는 대책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침수 지역 반지하 주택은 우선 금지하고 기존 세입자들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고지대 반지하에 대한 해법은 차분하게 찾는 등 우려되는 부분을 해결할 다양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당장 급한 불인 수해 피해 복구 작업과 다가올 폭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도 마음을 모아야 한다.
이번 폭우의 원인이 기후변화인지에 대해서는 분석이 필요하지만, 간접적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온난화가 가속화할 경우 예측 불가능한 날씨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이를 위해 시민들은 10년 만에 재추진되는 빗물터널 건설 등 대책이 잘 진행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한다. 좋은 대책이나 사업이 나와도 실행되지 않으면 이러한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