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식품업계가 최근 외식 사업에 줄줄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자사 제품을 테스트하고, 고급 레스토랑을 내세워 프리미엄 이미지를 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식품 제조업보다 시장 성장성이 높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식품제조업과 외식업 시장은 2005년만 해도 규모가 비슷했지만, 10년 후 시장 규모는 30% 가까이 차이를 벌렸다. 이 기간 식품 제조업 성장률은 92%였지만 외식업은 133.5% 몸집을 불리며 108조 원대로 뛰었다. 소득 수준 향상에 따른 외식 소비 증가로 2019년에는 180조 원을 넘었다는 업계 분석도 나온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의 수입맥주 브랜드 스텔라 아르투아는 17일 서울 이태원에 레스토랑 ‘프리츠 아르투아(Frites Artois)’을 오픈했다. ‘프리츠 아르투아’는 스텔라 아루투아 생맥주와 프리츠 등 벨기에 대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이다. 지난해 팝업 레스토랑을 선보인 오비맥주는 오픈 한달 만에 일평균 방문객 300명을 기록하고, 스텔라 아르투아 생맥주가 1만 잔 이상 판매되며 한남동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자 상시 운영 레스토랑으로 선보이게 됐다는 후문이다.
‘프리츠 아루트아’는 건물 내외부를 하얀색으로 꾸며 유럽풍 분위기를 연출했고,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이슬아 작가가 스텔라 아르투아와 서울 도심 속 라이프스타일의 만남을 주제로 디자인한 대형 일러스트를 전시해 세련된 멋을 더했다. 소비자들에게 최상의 스텔라 생맥주를 제공하는 고급 바 테이블인 ‘바 아르투아(Bar Artois)’도 마련했다.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야외 테라스도 갖췄다.
매일유업은 이달초 관계사 엠즈씨드를 통해 이탈리안 레스토랑 ‘더 키친 일뽀르노’를 역삼 센터필드점에 신규 매장을 오픈했다. ‘더 키친 일뽀르노’는 2021년 엠즈씨드가 새롭게 선보인 이탈리안 다이닝 레스토랑 브랜드로 한국 정통 나폴리 퀴진 1세대인 ‘살바토레 쿠오모’를 운영했던 13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청담점과 광화문 점을 비롯해 5개점을 운영 중이다.
‘더 키친 일뽀르노’ 역삼 센터필드점은 신선한 육류와 해산물로 만든 그릴 요리, 현지에서 공수한 치즈 등을 활용해 와인과 어울리는 좋은 정통 나폴리 스타일의 프리미엄 다이닝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다. 매일유업은 2006년 외식 사업부를 신설해 현재 ‘더 키친 일뽀르노’를 비롯해 커피 전문점 ‘폴바셋’과 한식 브랜드 ‘송반’ 등을 운영 중이다.
지난 5월에는 농심과 풀무원이 비건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농심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Forest Kitchen)’을 열고 총괄 셰프로 미국 뉴욕의 전문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졸업 후 뉴욕 미슐랭 1, 2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김태형 씨를 선임했다. 파인 다이닝을 표방하는 이 레스토랑은 농심의 대체육을 활욜해 런치 5만5000원과 디너 7만7000원의 단일 메뉴를 선보이며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같은달 풀무원도 비건표준인증원으로부터 비건 레스토랑 인증을 받아 100% 식물성 식재료로 즐길 수 있는 ‘플랜튜드(Plantude)’ 1호점을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지하 1층에 오픈했다. ‘플랜튜드’는 식품 대기업 가운데 첫 비건 인증을 받은 레스토랑으로 총 47석 규모로 마련됐다.
최근 식품업체들이 너도나도 외식 사업에 도전장을 내는 것은 고객 취향 탐색을 위한 상품 테스트를 위해서라는 점이 우선 꼽힌다. 자사 제품의 시장 반응을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실제 농심은 지난해 초 식물성 브랜드 ‘베지가든’을 론칭하고, 비건 사업에 본격 나서고 있다. ‘포리스트 키친’에서도 베지가든의 대체육을 사용한다. 풀무원은 비건라면 정·백·홍을 출시한 데 이어 이달에는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지구식단’을 론칭해 비건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마케팅에도 유리하다. 최근 외식 사업에 나선 식품제조사들은 대부분 프리미엄 레스토랑을 선보이고 있다. 외식업 진출에는 고급 레스토랑 이용에 따른 경험을 상품 이미지와 연결시키고, 소비자와 형성된 관계를 식품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경험 마케팅’ 전략이 녹아 있다. 브랜드 철학과 가치, 취향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동시에 SNS(소셜네트워크시스템)를 통한 전파도 기대할 수도 있다.
기존 사업의 리스크 부담도 덜 수 있다. 사실 식품 산업은 인구 감소 등 외부 요인에 따른 장기적인 사업 불확실성이 있다. 실제 농심은 원자재 가격 오름세에 24년 만에 분기 첫 적자를 기록했고, 유제품 기업인 매일유업도 최근 우유 소비 감소와 출산율 저하 리스크를 안고 있다.
더욱이 식품 제조사들은 비슷한 제품을 출시해 경쟁이 치열해 가격 민감도가 높다. 특히 최근처럼 원부자재 가격이 급등할 경우 소비자 반발을 의식해 제품가격 인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만, 외식사업에서는 메뉴 변화와 용량 조절 등으로 상쇄가 용이하다.
식품 제조사에서 외식 사업으로 다각화에 성공한 업체로 SPC그룹이 꼽힌다. 삼립과 샤니라는 브랜드와 ‘국찐이빵’으로 유명했던 SPC그룹은 파리크라상과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에 이어 현재 피그인더가든과 쉐이크쉑버거, 에그슬럿, 파스쿠찌, 시티델리, 라그릴리아 등 여러 외식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 산업은 비슷한 상품이 곧바로 나오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외식 사업은 식품 제조에서 얻은 노하우를 이식하기에도 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