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념게 정치권에서 표류해온 '납품단가 연동제도'가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에 물품을 납품할 때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토록 하는 게 핵심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해 하청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받자 처음으로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시장의 자율성과 거래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보류됐다. 그랬다가 최근 대선 후보들이 제도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국회에서도 여야가 필요성에 공감함에 따라 법제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투데이는 최근 의원회관에서 중소기업 전문가인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만나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30년간 정책통으로 활동해온 김 의원은 21대 국회의 '중소기업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지난해 11월 납품단가 연동제의 내용이 담긴 상생협력법과 하도급법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납품단가 연동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를 줄이고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묘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공급망 체계 불안이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는데 대기업은 영업이익이 상당히 높지만 중소기업은 올해도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며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부담의 문제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나눠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의 높은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은 글로벌 원자재 가격에 대한 흡수가 반영돼 있다"며 "오른 가격을 납품 가격에 반영하지 않는 체제는 중소기업에 부담을 다 떠안으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납품 가격을 올려주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온다. 단가 인상분이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김 의원은 "소비자 가격에는 원자재 가격만이 결정 요소가 아니다. 인건비, 물류비 등 여러 요인이 있다"며 "최근 물가 급등도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 원자재 가격 급등 때문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원청 기업의 대다수가 중소기업이라 제도의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21년 하도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청기업의 83%가 중소기업이다.
김 의원은 "일차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지만 중소기업 간에 만연한 불공정한 거래도 시정을 해야 한다"며 "필요하면 단계적 도입이나 규모의 차등화를 둬서 일차적으로는 몇인 이하 사업장에는 일정 부분 시한을 주고 달리 적용하는 식으로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삼성이나 현대, 포스코 등은 자체적으로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제는 대기업도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며 "중소벤처기업부가 9월부터 시범 운영하는 납품단가 연동제에 20여 곳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의원은 현재 국회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에서 야당을 대표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민생 경제와 직결된 시급한 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해 출범한 특위는 이달 중 납품단가 연동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김 의원은 "특위는 1차 안건으로 유류세 인하와 점심값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고 2차 회의를 개최할 때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가장 먼저 다루자고 구두로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며 "8월 말 결산안 처리 전에 단독으로 안건을 올려 심도 있게 논의하자는 얘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특위에서 납품단가 연동제가 처리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여당 안과 야당 안에는 납품 단가 연동 조건이나 페널티, 표준약정서에 담을 내용 등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큰 이견은 없는 것 같다"며 "전반적으로 대선 당시 각 당의 의지가 뚜렷했고 약속한 것이 있어서 흐지부지되면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법안이 발의가 돼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태도다. 이왕 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조금 더 속도감 있게 하면 좋지 않겠나"며 "가장 좋은 타이밍이 있다. 민생을 챙기는 국회와 정부의 모습에 중소상공인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만약 민생특위에서 처리가 되지 않더라도 올해 안에는 상임위에서 합의 처리될 것"이라며 "상생법을 다루는 산자위와 하도급법을 다루는 정무위 두 곳이 소관이다. 하도급법과 관련해 정부 내부에서 온도 차가 있으면 상생법을 우선 통과시키고 시차를 좀 두고 하도급법을 통과시키면 된다. 기술탈취 관련 법안을 통과시킬 때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후반기 남은 국회에서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환경을 개선하고 신사업 진출을 지원하는 데 매진할 계획이다.
그는 "중소기업 거래 구조에서 불공정을 완화할 수 있는 투 트랙으로 납품단가 연동제와 협동조합의 공동행위 허용 등이 있다. 협동조합 공동행위란 결국 조합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대리점이나 가맹점이 교섭력을 강화해 프랜차이즈의 대항마가 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소기업 협동조합이 과거 만들어지긴 했지만 소비자의 주권을 보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1000여 개의 협동조합이 교섭력을 강화해 가격 협상 과정에서 대기업에 목소리를 내는 환경을 조성하면 사회적 을들이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중소기업 보호뿐만 아니라) 신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한 여건 조성도 같이해야 한다"며 "단지 중소기업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날개를 달아줘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 모두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현재 광주광역시를 주목하고 있다.
그는 "광주는 제조업에서 자동차 비중이 40%를 차지한다. 완성차 업체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나 기아차가 있는데 친환경 자동차 등 미래 모빌리티 전환하는 과정"이라며 "중소기업들도 친환경 기업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프라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재ㆍ부품ㆍ장비 특화단지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5개 특화단지가 지정돼있는데 미래 사업 관련 내용은 지정돼있지 않다"며 "제조업체들이 신성장 동력을 밀고 나가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서구 도심융복합특화단지 지정도 필요하다고 김 의원은 강조했다. 그는 "판교 테크노밸리나 구로 디지털단지처럼 도심에 신산업을 유치하고 도심의 교통과 인프라가 갖춰진 상태에서 청년들이 창업을 꿈꾸는 사회가 될 것"이라며 "그런 부분에서 기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