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성 그칠 듯…검찰 '옷 벗는 문화' 옛말 "기수 역전 이례적 현상 아냐"
이원석(사법연수원 27기) 대검 차장이 윤석열 정부 첫 검찰총장으로 낙점된 가운데 검찰총장 후보군에 올랐던 여환섭(24기) 법무연수원장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검찰 관행대로면 이 후보자 동기ㆍ선배 기수가 대거 사임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 내에서는 기수 역전에도 '옷 벗는 문화'가 옅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2일 검찰에 따르면 여 원장은 이날 법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후보자가 검찰 지휘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이유로 여 원장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평가한다.
현재 이 후보자와 사법연수원 동기거나 기수가 높은 검찰 간부는 19명이다. 총장 후보로 거론된 여 원장 외에도 김후곤 서울고검장(25기), 이두봉 대전고검장(25기)도 이 후보자보다 기수가 높다. 노정연 부산고검장(25기), 이주형 수원고검장(25기) 등도 이 후보자보다 선배다.
검찰에서는 검찰총장과 동기거나 선배 기수면 옷을 벗는 관행이 존재해 왔다. 엄격한 기수 문화 탓에 검찰총장 임명 시 기수가 역전되면 조직 관리와 지휘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이유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관행대로 '줄사표'를 낼 수 있다는 전망에 이 후보자는 동기와 선배 기수에게 “합심하자”는 뜻을 밝혔다. 그는 18일 선배 고검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검찰을 떠나지 말고 많이 도와달라"며 "수사권 축소 등 검찰 조직에 중대한 시기이니 잘 이끌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거 사임으로 지휘부 공백이 벌어질 수 있을뿐만 아니라, 검경수사권 조정(일명 검수완박) 등 주요 현안이 산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에서는 여 원장처럼 조직을 떠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발성에 그칠 수 있다는 의미다.
검찰과 법무부에서 ‘기수 역전’ 현상도 처음은 아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27기)이 후보자로 지명됐을 당시 김오수 검찰총장 등 선배 기수인 검찰 고위간부는 23명에 달했다. 지금도 선배 기수가 주요 고검을 지휘ㆍ감독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지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발탁됐을 때도 선배 기수들이 검찰을 떠나지 않았다. 검사장급 이상 간부 가운데 그의 동기ㆍ선배인 19~23기는 30명에 육박했다. 검찰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당시 김오수 법무부 차관(20기), 박균택 전 법무연수원장(21기), 김영대 전 서울고검장(22기) 등 동기와 선배 검사들은 자리를 지켰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도 동기나 선배가 자신 때문에 옷을 벗는 걸 원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실력 있는 검사들이 타의로 조직을 떠나면 개인은 물론 국가도 손해를 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수 역전에 무작정 옷을 벗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도 검찰 내 확산하고 있다. 검찰을 둘러싼 여건이 변하고 있는 데다,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검찰을 떠나는 일이 ‘나쁜 관행’이라는 공감대가 일부 형성되고 있어서다.
한 부장검사는 “기수 역전이 더는 이례적 현상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업도 연차나 나이와 관계없이 실력이 있으면 승진시키지 않느냐”며 “검찰도 인사권자의 철학에 공감하는 사람이 조직을 지휘하는 자리에 오르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수 역전에 동요하는 문화는 옅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