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이상기후’가 들어왔다
더 이상 탄소배출에 대한 책임을 미룰 수만은 없는 이때, 유럽과 미국은 지난해부터 각각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해 왔다. 탄소국경세는 이산화탄소(CO2)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강한 국가로 상품 혹은 서비스를 수출할 때 추가로 부가되는 무역관세를 의미한다. 환경 이슈를 선도해 온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를 통해 환경 덤핑을 막고 공정경쟁 구도를 조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2021년 6월 EU 집행위원회가 제출한 CBAM 제안은 유럽의회의 의결 과정을 거치며 더 강한 법률안으로 변화하였다. 이제 각료이사회의 입장 채택 과정을 남겨 둔 CBAM은 시멘트, 전력, 비료, 철강, 알루미늄에 더해 수소, 유기화학물질, 고분자물질 부문에 적용되며, 생산공정에서 직접 배출된 탄소뿐 아니라, 상품을 생산하는 시설 경계 내에서 사용된 전기의 배출량까지 포함하도록 조정되었다. 이는 흔히 말하는 탄소발자국의 일부까지 추적하여 계측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당장 내년부터 EU는 관세 부과의 시범 시기를 거치며, 2025년 법률을 적용해 시행할 예정이다.
CBAM 도입과 관련하여 EU 안팎에 찬반론 또한 팽배하다. 첫째, 유엔(UN)기후변화협약은 현재까지 기후변화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책임의 차별성이라는 법적 원칙을 고수해 왔다. 특히 파리기후변화협정은 각 국가가 결정한 기여 수치를 인정하고, 이에 따른 감축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CBAM은 EU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여 적용되므로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둘째, CBAM은 세계무역기구(WTO) 창설 당시의 환경과 무역에 대한 논의의 결과와 배치된다. WTO 출범을 앞두고 환경을 고려한 무역 전문가들과 무역을 고려한 환경 전문가들은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열띤 논쟁 끝에 직접세에 대한 국경 조정은 생산자 원칙, 간접세에 대한 국경 조정은 소비자 원칙으로 일단락되었다. CBAM은 제품 생산국에서 조세가 부과되어야 한다는 생산자 원칙에 위배되는 조치로 환경과 무역에 대한 그간의 합의사항이 조정된 사항인 것이다. 나아가 EU 내부에서도 각 산업단체와 기업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다. CBAM 도입을 둘러싸고 환경규범이 높은 EU 시장을 보호할 수 있으리라는 다수의 목소리가 앞서고 있으나,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든가 제도로 인해 우회, 회피 현상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은 양상이다. 2012년 EU는 역내 취항하는 모든 항공사들에 탄소세를 부과하고자 도입한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 Carbon offetting and Reduction Scheme for International Aviation)를 역외 국가와 역내 기업의 반발로 인해 크게 후퇴시킨 경험이 있다. 하지만 최근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극심한 이상기후는 CBAM 도입에 더욱 힘을 싣게 될 것이다.
석탄발전의 비중이 높은 편인 한국은 이제 CBAM과 높아진 환경규범의 국제경제질서에 적응하기 위해 산업체질을 개선하고 대응책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