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권이 사라지고 시작한 부동산 경매는 무효라는 판단이 나왔다. 또, 소멸한 담보권으로 받은 배당금은 집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경매는 무효이지만 매수자의 부동산 취득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이유로 돈을 내고 집을 갖지 못하게 된 사람이 배당금을 받아야 한다는 기존 판례는 유지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5일 오후 A 사가 B 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B 사는 C 씨에게 물품대금 등을 받아야 했다. C 씨는 빚에 대한 담보로 자신이 소유하던 땅 4곳에 공동근저당권을 B사에 설정해주기로 했다. 공동근저당권은 하나의 채권을 담보하는 목적으로 여러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주는 것을 뜻한다.
C 씨가 숨지자 B 사는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고 판단해 근저당권이 설정된 부동산들을 경매 신청했다. 당시 B사는 처음 경매가 이뤄진 땅 1곳을 매각해 2억2000여만 원을 배당금으로 받았다. 나머지 땅 3곳은 7년 뒤에 경매에 넘겼고 B사는 2억6000여만 원을 받았다.
C 씨에게 대출금 채권을 갖고 있던 A 사는 문제를 제기했다. 처음 실행한 경매에서 B 사는 청구한 금액을 모두 받았으므로 공동근저당권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경매에서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A 사는 B 사가 이미 소멸한 공동근저당권을 근거로 돈을 더 받았다며 부당이득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냈다.
1심은 A사가 판정승을 거뒀다. 재판부는 "B사는 1차 경매에서 공동근저당권이 담보하는 피담보채권 전액을 배당받아 공동근저당권은 소멸했다"며 "2차 경매에서 받은 배당금은 무효인 근저당권에 기한 것이므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2심은 B 사가 신청한 2차 경매가 무효라고 판단하면서도 배당금을 A 사에 주면 안 된다고 했다. 경매를 무효로 간주하면 부동산 거래계약도 없었던 것이 돼 배당금은 돈을 주고 땅을 샀던 매수인에게 지급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합 역시 경매 무효로 부동산을 취득하지 못한 매수인이 배당금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담보권이 소멸하더라도 매수인의 부동산 취득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민사집행법 267조에 근거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경매가 개시된 뒤 담보권이 소멸했다면 매수인의 부동산 취득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전합은 기존 판례에 문제가 있는지, 담보권 소멸 시점은 고려할 필요가 없는지 등을 심리한 뒤 판례를 바꾸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경매가 개시되기 전 담보권이 사라지면 사실상 담보권이 없는 상태로 경매가 진행되므로 적법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담보권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경매가 진행되다 소멸했다면 절차를 이어가야 한다고 부연했다.
대법원은 "만약 경매 시작 전에 담보권이 사라지면 경매가 유효한 것으로 본다면 담보권 등기에 대한 공신력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이는 등기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법체계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B 사 2차 경매도 사라진 근저당권에서 시작했다며 무효라고 판단했다. 다만 이미 배당금을 받은 뒤 2심부터 경매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B 사가 배당받을 권리가 없는데도 배당금을 계속 보유하기 위해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라며 "신의성실과 금반언(모순행위 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김재형ㆍ안철상ㆍ김선수ㆍ이흥구ㆍ오경미 대법관은 별개 의견으로 "소멸한 담보권에 기초해 경매절차가 개시되고 부동산이 매각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경매는 유효하고 대금을 낸 매수인은 부동산 소유권을 적법하게 취득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