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강세 저지할 요인 없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잭슨홀 매파(통화 긴축 선호) 발언이 달러 강세에 불을 붙이고 있다. 29일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350원을 돌파하면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고, 연내 1400원을 위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파월 의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 미팅)에서 앞으로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 이후에도 “당분간 제약적인 (통화) 정책 스탠스 유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7월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전월보다 둔화했다는 발표가 잇따랐음에도 “단 한 번의 (물가 지표) 개선만으로는 물가상승률이 내려갔다고 확신하기에는 한참 모자란다”라며 “멈추거나 쉬어갈 지점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오건영 신한은행 WM사업부 부부장은 “현재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있는 원인은 미국 금리 인상이 가장 크다”며 “기존 미국 금리 인상은 환율 1310원 레벨에 반영됐는데, 잭슨홀을 앞두고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에 외환시장이 자극받았다”고 말했다.
오 부부장은 이어 “잭슨홀 이후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또 한 번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부각됐고, 내년에 한두 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도 나오며 시장에 큰 부담을 줬다”며 “1350원까지 환율을 밀어 올린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높은 환율이 지속될 것으로 봤다. 오 부부장은 “주식 시장이 급락하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났는데, 달러가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라며 “금리가 오르면 달러 수요가 더 몰린다. 앞으로도 높은 환율 레벨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와 수출 경쟁을 하는 국가들도 환율이 치솟고 있다”라며 “위안화 가치도 29일 떨어졌고, 수출 경쟁국 화폐 가치가 하락할 때 원화 가치만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날 위안·달러 환율은 6.93위안까지 올라서면서 연고점을 갈아치웠다.
이처럼 대외적인 요인으로 치솟는 환율 오름세를 저지할 만한 요인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우려다. 애초 시장은 환율이 이번 주 내로 1350원을 돌파할 것이라 내다봤다. 예상보다 빠른 1350원 돌파에 1400원도 위협적인 분위기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추가적인 상승세에 무게가 실린다”고 관측했다. 그는 “달러 강세 기조를 막을 수 있는 재료나 이벤트가 부재하다. 다음 달 공개되는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나오기 이전에는 뚜렷한 재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다음 레벨은 1400원인데, 아직 가능성은 작다”라며 “다만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겨울철 에너지 문제 등이 변수”라고 밝혔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중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 우려와 달러 강세 등 요인이 3분기 정도까지는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유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1380원까지를 상단으로 열어놓고, 당국 스탠스 등을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말까지는 1300원대 후반을 형성하고, 더 나가면 내년 초 1400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외환 당국의 속도 조절과 구두개입 가능성은 있지만, 대외적인 부분이 환율 상승의 주원인이라 방향성을 바꿀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당국은 이날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놓은 데 이어, 환율이 1350원까지 치솟자 실개입을 통해 미세 조정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