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살다 보면 알고 있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보고 놀라며 신기해하는 일이 가끔 있다. 연예인인 경우 ‘리틀 아무개’라며 연상이 되는 선배 연예인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연서 씨는 데뷔 초기 한동안 ‘리틀 김희선’으로 불렸다. 남자 연예인 사이에도 닮은꼴이 꽤 있는데, 특히 배우 강동원 씨와 주원 씨는 얼핏 보면 둘 가운데 누군지 모를 정도다.
얼굴 생김새에는 유전자의 영향이 압도적으로 크다. 유전 정보인 게놈이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얼굴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다만 이들도 나이가 들수록 환경과 생활 습관에 따라 외모가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 한다. 그런데 게놈의 절반을 공유하는 형제자매 사이도 얼굴이 거의 안 닮은 경우가 있는데 전혀 남남인 두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닮을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얼굴 생김새에는 수많은 유전자가 관여할 것이다. 이 가운데 영향력이 큰 10개가 각각 두 가지 유형이 있고 그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하자. 확률적으로 보면 형제자매의 경우 절반인 5개는 기본으로 같고 나머지 5개 각각도 같을 확률이 반반이다. 즉 대략 7~8개가 같은 유형이다. 그런데 서로 남남인 사이에도 10개 모두 같은 유형일 확률이 0.1%다(2분의 1을 열 번 곱하면 1024분의 1이다). 즉 1000명 가운데 한 명은 나와 상위 얼굴 유전자 10개의 유형이 같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개별 유전자 유형이 비슷하지 않아도 얼굴이 닮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콧대가 높은 경우 코뼈 성장을 촉진하는 유전자 활성이 큰 유형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코뼈 성장을 억제하는 유전자 활성이 작은 유형인 경우도 있다. 여러 유전자의 영향이 합쳐진 결과물이 우연히 비슷하게 나온 것이라는 말이다.
지난달 23일 학술지 ‘셀 리포트’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얼굴이 비슷한 사람은 실제 유전자도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바르셀로나대 등 스페인 공동 연구팀은 1999년부터 닮은꼴을 모아온 사진작가 프랑수아 브루넬에게서 닮은꼴 32쌍의 사진을 받았다. 이들은 객관성을 얻기 위해 사람이 아니라 얼굴인식 소프트웨어 3종에 닮은 정도 평가를 맡겼다. 그 결과 32쌍 가운데 16쌍이 모두에게서 합격 점수를 받았다.
이들의 게놈을 분석해 서로 가까운 정도에 따라 배치한 결과 닮은꼴 16쌍 가운데 9쌍이 여기에서도 서로 가장 가까운 쌍을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굴이 닮은 사람은 유전자도 닮았다는 뜻이다. 이들 9쌍은 전체 유전자의 15%에 해당하는 3700여 개가 동일한 유형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얼굴 생김새에 관여한다고 알려진 유전자 다수가 포함돼 있었다.
한편 참가자들은 신체 특성 및 생활 습관에 대한 설문지도 작성했는데, 분석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얼굴이 닮은 사람은 키와 몸무게도 비슷할 뿐 아니라 흡연 여부나 교육 수준 등 다른 영역에서도 임의로 짝을 맞춘 경우보다 차이가 훨씬 작았던 것이다. 얼굴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그 사람에 대해 대충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관상을 보는 사람들 역시 오랜 경험을 통해 얼굴 생김새를 패턴화해 상대를 파악하고 맞춤형 조언을 해주는 것 아닐까.
혹시나 해서 닮은꼴 연예인인 김희선 씨와 오연서 씨의 키와 몸무게를 찾아보니 각각 168㎝와 170㎝, 45㎏과 48㎏이었고 강동원 씨와 주원 씨는 각각 186㎝와 185㎝, 70㎏과 68㎏이었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좀 놀랐다. TV 화면에서 봐도 얼굴뿐 아니라 체형도 꽤 비슷했던 것 같다.
얼굴 유전자라고 해서 얼굴 생김새에만 관여하는 건 아닐 것이므로 아주 뜻밖의 결과는 아니다. 인간 유전자는 2만여 개에 불과하므로 한 유전자가 몸의 조직이나 기관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얼굴 정보를 활용해 유전자 관련 질병 여부를 예측하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영국에 사는 스위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책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에서 뤼시엥 도데가 친구 마르셀 프루스트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을 때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프루스트는 유화 속에 그려진 인물들을 자신이 아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날도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1480년대 작품 ‘노인과 소년’을 보고 파리 사교계의 명사인 마르키 드 로와 꼭 닮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100여 년 전 기억에 의존해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가 남긴 아래 문구를 보면서 과학과 예술은 통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학적으로 볼 때 인간 유형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항상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