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남긴 것

입력 2022-09-06 18:00수정 2022-09-0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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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현 사회경제부장

대륙 크기와 맞먹는 허리케인과 뇌우와 폭풍을 동반한 슈퍼셀로 해일이 발생하면서 뉴욕 지하철과 도서관이 침수된다. 로스앤젤레스(LA)는 초대형 토네이도가 휘몰아치며 건물 외벽이 종잇장처럼 뜯겨나간다. 도쿄에는 볼링공만 한 우박이 쏟아진다. 순식간에 얼어붙어 헬기는 추락하고 헬기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그대로 동사하는 장면에선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2004년 전 세계에서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의 명장면들이다. 기후를 주제로 한 재난 영화 중 가히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투모로우’의 영어 원제는 ‘The day after Tomorrow’로 내일의 다음 날, 즉 모레를 뜻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다가올 수 있는 날’을 의미해 제목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개봉 18년 만인 2022년 현실에서 역대급 태풍 힌남노를 목도하게 됐다. 힌남노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간의 상식을 깼다. 우선, 기후 관측사상 처음으로 북위 25도선 이북의 바다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북상할수록 세력이 되레 강해졌다는 점이다. 태풍 위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북위 30도를 돌파할 때 힌남노의 중심기압은 930헥토파스칼(hPa), 중심최대 풍속은 시속 180㎞였다. 역대급으로 불렸던 2003년 태풍 매미의 당시 중심기압이 935hPa이었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위력적이라는 점에서 힌남노 위력이 매미보다 강했던 것이다.

힌남노는 6일 오전 4시 50분경 경남 거제시 부근에 상륙한 후 7시 10분경 울산 앞바다로 빠져나갔다. 예상보다 빠른 2시간 20분 만에 한반도를 지나면서 다행스럽게도 인명·재산 피해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2002년 태풍 루사 때는 사망 209명, 실종 37명, 이재민 6만3085명, 재산피해 5조1479억 원을, 2003년 태풍 매미 때는 사망 119명, 실종 12명, 이재민 6만1844명, 재산피해 4조2225억 원을 기록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급류에 휩쓸린 사망사고가 발생했는가 하면, 침수 피해와 추석을 앞둔 농산물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선 힌남노 영향으로 추정되는 동시다발성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장은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편에선 힌남노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이 만든 괴물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북위 25도 위에서 발생한 것은 적도 부근이 뜨거워진 탓이고, 갈수록 위력을 키운 것은 그간 태풍 발달을 방해했던 차가운 바닷물과 상승 제트기류라는 두 가지 방어막이 모두 사라진 탓이다.

그렇잖아도 올여름 세계는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서울은 80년 만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를 겪었다. 영국은 40.3도, 프랑스는 42도로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고, 이탈리아는 7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보이는 등 유럽에선 심각한 더위와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핵과학자회보에서 만든 지구종말시계는 2020년 1월 기준 23시 58분 20초를 가리키고 있는 중이다. 인간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는 자정까지는 불과 100초를 남기고 있다. 다만, 이는 인간종말시계로 이름을 바꿔 불러야 옳지 않을까 싶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는 2018년 10월 지구온난화 1.5도라는 특별보고서를 전 세계 195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반면, 한국은 2000~2019년 기준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2.4톤으로 세계 4위다. 영국의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AT)은 호주, 뉴질랜드,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우리나라를 ‘세계 4개 기후 악당’에 포함하기도 했었다.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겠다는 목표에 비춰 노력이 매우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경제에도 직접적 영향을 준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당시 후보자가 알아듣지 못해 회자됐던 ‘RE100’이 대표적인 예다. 2021년 1월 기준 구글과 애플 등 284개 글로벌 기업이 동참하고 있으며, 이 기준에 맞추려면 해외에 수출하는 제품을 생산할 때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 들어 이에 대한 대응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투모로우’의 모레는 이미 오늘로 다가와 있다. 정부의 가시적 노력을 촉구해 본다. kimnh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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