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거치면서 민심을 확인한 정치권이 ‘민생’을 화두로 꺼냈다. 여야 가릴 것이 내분과 정쟁, 각종 의혹 등에 노출되며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먹고사는 문제를 챙겨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하지만 민생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한 방안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국민의힘은 민생에 집중하기 위해 비대위 구성을 조기에 마무리 짓겠다는 방침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사법·정책·예산 등 전방위 공세를 예고했다. 먹고사는 문제와는 거리가 먼 정국 주도권 쟁탈전이 예고된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심이 ‘생계’에 쏠려 있다고 봤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2일 논평을 통해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민심 밥상에서 주요 화제는 물가, 취직, 주택 등으로 분명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정치를 가리키고 있었다”고 전했다.박 수석대변인은 “국민께서 원하시는 정치의 핵심은 정쟁이 아니라 민생”이라며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던 부모님 세대들을 본받아, 약자와 미래를 위하는 법안과 예산을 충실히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민생 해결의 열쇠를 ‘엄정한 법 집행’과 ‘새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찾기로 해 오히려 여야간 긴장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박 수석대변인은 “국민들께서는 민생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을 ‘공정과 정의’라고 했다”며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어떤 불의에도 타협하지 않고, 엄정한 법 집행으로 민생의 가치를 지키겠다.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기 위한 정쟁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이어 “새 비대위를 조속히 구성해 국회를 약자와 미래가 함께 하는 미래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비대위 구성을 마치는 대로 민생 입법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박 수석대변인은 “약자와 미래를 위하는 법안과 예산을 충실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민생을 화두로 꺼냈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연휴기간 많은 분들의 말을 들었다. 국민들이 말하는 추석 민심은 한마디로 불안이었다”라며 “윤석열 정부에 대해 민생 뒷전, 정치검찰 상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윤석열 정권은 국민의 걱정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 탄압을 중단하고 하루빨리 민생 현안 의제를 놓고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댈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조 사무총장은 이어 “국민은 13년 만에 최악의 먹거리 물가에 맞은 한가위에 조상님을 뵙기 민망할 정도로 역대 가장 초라한 제사상이다”며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텨야 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불안하고 막막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최근 행보는 민생 보다는 검찰의 기소로 사법 리스크에 휘말린 이재명 대표를 적극 엄호하는데 집중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민주당은 최근 검찰 행보를 ‘야당 탄압’이라고 보고 당내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위원장 박범계 의원)’를 설치했다. 박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득표율이) 불과 0.73% 차이밖에 안 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일방적인 표적 수사”라며 “이재명 대표에 대한 탄압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민주당의 향후 정국 운영은 민생 드라이브에 집중될 예정이다. 특히 ‘22대 입법 과제’를 통해 이재명 대표의 민생 기조를 전폭 지원할 방침이다. 김성환 정책위 의장은 “지역 화폐 예산을 반드시 부활하겠다는 게 추석 민심”이라고 강조했다. 또 “원래 박근혜 정부가 약속했던 전 국민 20만 원 주겠다던 기초노령연금, 70%만 주는 것에 이젠 100% 줘야하지 않겠나”며 향후 기초연금 정책 손질도 예고했다.
이렇듯 여야가 추석 민심을 제 논에 물 대기식으로 해석하면서 민생 의제를 놓고 여야 간 치열한 기 싸움이 펼쳐질 전망이다. 내홍을 겪는 국민의힘도, 사법리스크에 노출된 민주당도 모두 ‘민생 드라이브’로 위기 탈출을 위한 돌파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정일환 기자 whan@ 유혜림 기자 wisefo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