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역환율 전쟁과 한국경제의 저질체력

입력 2022-09-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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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안화 환율이 지난 15일 ‘1달러=7위안’ 선을 돌파했다. 중국에선 ‘破7(포치)’라 부른다. 과거 중국은 미·중 패권 전쟁이 불거질 때마다 ‘포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려 중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너무도 잘 아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포치’를 바라만 볼까. 전 세계는 지금 수입물가가 껑충 뛰어오르며 인플레이션 고통에 신음한다. 각 국가의 중앙은행들은 자국 통화 방어에 나서는데 이전과는 달리 자국 통화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온 힘을 쓴다. 중국도 사정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중국은 막대한 돈을 풀었지만, 경기가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2분기(4∼6월) 경제성장률은 0.4%에 그쳤다. 중국의 8월 수출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은 4개월 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져 7.1%에 머물렀다.

차이신에 따르면 중국국제선물유한공사의 왕융리 매니저는 “연내에 달러당 7위안 선이 붕괴돼도 위안화 환율은 중국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풍부해 환율 안정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의 ‘역환율전쟁(reverse currency war)’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한국이 ‘역환율전쟁’에서 버틸 체력이 있을까.

부채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신흥국의 경우 국가부도 도미노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달러로 돈을 많이 빌린 정부나 기업의 빚 부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채권자에게 달러로 이자를 지불하는 것은 자국 통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는 아르헨티나, 터키와 같은 나라에 특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스리랑카는 지난 5월 510억 달러(약 67조5750억 원) 규모의 국가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졌다. 잠비아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지난 2020년 아프리카 대륙 가운데 처음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추락하는 원화가치를 보면 한국도 부채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마지막 거래일 대비 이날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7.2% 하락했다. 같은 기간 중국 위안화, 인도 루피화, 튀르키예 리라화, 남아공 랜드화도 평가절하됐지만, 이런 주요 신흥국 통화의 가치 하락 폭은 원화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나라 곳간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국제투자대조표(잠정)’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6월 말 기준 대외채무는 지난 3월 말보다 79억 달러 늘어난 6620억 달러로 집계됐다. 대외채무액으로는 역대 최대치다. 단기외채(1838억 달러)는 3월 말보다 89억 달러 늘었다. 반면 만기가 1년이 넘는 장기외채(4782억 달러)는 3월 말보다 10억 달러 줄었다.

대외지급능력과 외채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는 일제히 악화했다. 6월 말 기준 단기외채 비율(41.9%)은 지난 3월 말보다 3.7%포인트 올랐다. 지난 2012년 2분기(45.6%)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다. 해당 비율이 40%를 넘어선 것도 2012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환율 방어능력도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8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4364억 3000만 달러로 한 달 전보다 21억 8000만 달러 줄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이 올해 급격히 줄면서 환율시장 방어 능력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며 “국가별 외환보유액만으로 해외 수입 대금을 충당할 수 있는 기간은 한국은 8개월, 인도는 9개월, 인도네시아는 6개월 정도”라고 전했다.

돈 들어올 창구도 막혀있다. 8월 무역적자는 94억7000만 달러로 월간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대로면 여섯달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

이런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기꺼이 ‘위안화 때리기’를 감행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우리나라도 불똥을 피하기 어렴다. 우리 경제가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 글로벌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국가 역량을 실물 경기 회복과 외화 및 부채 건전성에 맞춰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 상승했다. 우리 경제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는데 우리 정부는 이를 감당할 능력과 의지가 없는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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