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경상북도와 전라남도는 기대할 만했다. 지금 농업과 농촌은 과거와 매우 다르다. 최고 수준의 기술이 응용되고 있으나, 뒤떨어진 인식도 혼재한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토대로 대전환이 필요하다. 경상북도가 지난달 ‘농업대전환추진 위원회’를 구성해 ‘농업을 첨단 산업으로, 농촌을 힐링 공간으로’라고 외치며 혁신적인 16개 과제를 제시했다. 필자와 공동 위원장을 맡은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은 “영세한 한국 농업을 규모화하고 불필요한 보조금을 줄여 네덜란드와 같은 수출 강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 흐름에 부합하며 스마트 농업, 디지털 기술, 애그테크(Ag-tech) 시대에 알맞은 시도다.
김영록 전라남도 지사도 ‘ 세계로 웅비하는 대도약, 전남 행복시대’를 내걸고 남부권을 신해양, 문화관광, 친환경 수도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세운다. 전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벼, 보리, 양파 등 13개 품목이 전국 1위인 농도의 수장답다. 지역에 반도체 산업생태계를 조성해 청년 일자리 12만 개를 창출할 계획이다. 2022년 지자체 일자리 종합대상을 수상한 실력을 기대한다.
산업의 중요성은 일반적으로 종사자 비중과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기여율로 평가한다. 그런 관점에서 농업 종사자 비중은 2021년 기준으로 4.3%, GDP 기여율이 2% 미만인 한국 농업 중요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관련 분야를 포함하면 달라진다. 지난해 농가 인구는 222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4.3% 수준이다. 식품제조와 외식업계 종사자가 약 260만 명이다. 귀농·귀촌 인구가 51만 명이다. 생산 이외의 가공이나 유통, 저장, 수출입, 종자, 비료, 농기계 등 관련 부문 종사자를 다 합치면 약 600만 명에 이른다. 농산업은 전체 국민의 약 13%가 종사하는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먹거리로서 농업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전쟁 등 비상시나 다가오는 남북통일에 대비해 민족의 명운이 달린 산업이 농산업이다.
농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은 더욱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도 미래 성장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래농업을 이끌 청년 농업인을 3만 명으로 확대 육성하고, 스마트 농업과 디지털 기술, 푸드테크(Food-tech) 등을 농업에 결합해 융복합산업을 육성하며, 농산물 수출을 2027년까지 15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엊그제 모 일간지에서 “식량 가격 급등에 ‘애그테크’로 투자 몰린다”며 국내 청년 기업인 ‘그린랩스’가 국내 최초로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이노베이터’에 선정됐다고 보도했다. 그린랩스는 농작업 자료, 농산물 시세 등 각종 영농 정보를 모아 제공하는 서비스기업이다. 누적 이용자가 70만 명 이상이며, 기업 가치가 8000억 원으로 평가받는다. 필자가 만나본 그린랩스 대표는 매우 인상적이다. 농업이 아닌 물리학을 전공한 40대 초반의 청년 기업인이다. 비 농업부문의 경험과 지식을 창의적 발상을 바탕으로 농산업의 미래 가능성에 도전해 성공한 것이다.
이미 농업부문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드론·로봇 등 첨단 기술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애그테크에 유입된 전 세계 벤처투자금이 2021년 기준으로 517억 달러(약 71조 원)에 이를 정도로 미래성장 가능성이 크다.
우리 농업과 농촌은 글로벌 흐름 속에서 갈 길을 찾아야 한다. 자유무역과 개방화 대세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길은 있다. 2012년 선진 20개국(G20) 농업장관 회의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때이다. 농산물 시장 자유화를 강조하는 곡물 수출국들 주장에 당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규제 없는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 농산물 시장은 적절한 규제를 해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무역 자유화만이 만능이 아니다는 주장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필자의 옆에 앉아 있던 톰 빌색(Tomas Vilsack) 미국 농무장관의 떨떠름한 표정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103만 호 농가, 호당 평균 1.5헥타르 경지, 2헥타르 미만이 88%를 차지하는 영세 소농 구조이다. 구조적으로 기업화는 어려우나 지분 참여 등 여러 가지 길은 있다. 농업부문이 독자적으로 헤쳐나가기 어렵다. 특성을 제대로 진단하고 여러 사람이 지혜를 모으면 올바른 처방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