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사면초가다. 환율 급등과 물가 상승, 수출 둔화, 무역적자 심화, 기업 실적 악화, 위험수위의 가계부채, 부동산 시장 침체, 외국인의 셀코리아와 자본 유출 가능성, 성장률 하락 등 온통 암울한 지표뿐이다. “위기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정부의 낙관론이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이유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꺾여 6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5월 이후 25년 만이다. 9월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288억8000만 달러로 외환위기 직전 해의 최대 기록(206억 달러)을 넘어섰다.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부진이 결정타였다. 각국의 고금리 행진에 따른 글로벌 수요 위축으로 재고가 역대급으로 쌓이고 D램 값은 계속 하락세다. 반도체 위기의 장기화까지 우려되면서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인 48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전망까지 나왔다. 기업 역외실적과 금융 서비스를 포함한 경상수지의 적자 전환도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경상수지 흑자는 그간 정부가 낙관론을 펴온 핵심 근거였다. 역설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는 위기로 한발짝 더 다가섰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고강도 긴축과 경기침체에 따른 실적 악화로 투자를 축소하는 등 속속 비상경영에 들어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20%, 30% 이상 급감할 것으로 전망됐다. 삼성전자는 하반기 반도체 매출 전망을 32% 낮춰 잡았다고 한다. 매출 1위 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위기론까지 제기된다. SK하이닉스는 6월 청주공장 증설을 보류했다. 현대오일뱅크와 한화솔루션도 최근 생산공장 설립 계획을 취소했다. 기업들의 생존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물가는 여전히 불안하다. 전기·가스료 인상으로 4인 가족 기준 월 7670원이 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물가를 자극할 소지가 다분하다. 금리 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 187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급락세로 돌아선 부동산 시장, 최근 급증한 한계기업도 시한폭탄이다. 외국인의 셀코리아로 자본유출 우려도 커진다.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퍼펙트스톰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위기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당리당략적 정쟁에 올인하고 있다. 이미 ‘김건희 특검’과 ‘이재명 방탄’ 등으로 정기국회 한 달을 허송했다. 4일 시작하는 국정감사도 정쟁의 장이 될 게 뻔하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한 감사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 서면조사를 둘러싼 여야 정면충돌은 그 예고편이다. 비속어 블랙홀에 이어 또다시 극단적 대립이 예상된다. 반도체특별법과 법인세 인하, 규제 혁파 등 기업의 사활이 걸린 법안 처리는 안중에도 없다. 거대 야당은 노란봉투법 등 반시장 법안에 매달리고 있다. 정치가 위기 극복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 경제의 최대 리스크가 된 4류 정치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