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뭡니까?”
1980년대 나비넥타이를 매고 신랄한 정치 평론을 했던 보수 원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4일 밤 별세했다. 향년 94.
5일 유족 등에 따르면 김 교수는 전날 밤 10시 30분께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서 숨졌다. 김 교수는 지난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뒤 회복했지만, 이후 건강이 나빠져 입원해 있었다.
1928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월남해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미국 에반스빌대와 보스턴대에서 각각 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보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연세대 교수를 지내며 잡지 ‘씨알의 소리’ 등에 박정희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등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기소돼 ‘학생운동권의 배후 조종자’로 몰려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 사건으로 해직된 뒤 1979년 10·26 때 일시 복직했다가 1980년 신군부의 탄압으로 다시 해직됐으며, 1984년에 복직했다.
고인은 1985년 신문 칼럼으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키도 했다. 일명 '3김 낚시론'이다. 그는 당시 ‘3김씨는 이제 정치를 그만두고 낚시나 할 것이고 민주주의를 위해 40대가 기수 역할을 하라’고 적었다. 고인은 1991년 강의 도중 ‘강경대 구타치사 사건’에 대해 “그를 열사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가 학생들의 반발이 일자 사표를 내고 학교를 떠났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새 정치를 주장하는 ‘태평양시대위원회’를 창립하고 한때 대권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1992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에 합류했으며 14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 갑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4년 신민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고 김종필 전 총리의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했다. 그러나 15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하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나비넥타이와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고인은 1980년대 정치평론을 하면서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말년에는 보수진영 원로이자 보수논객으로 활동했다. 지난해까지도 유튜브 채널 ‘김동길TV’를 운영했다. 올해 초에는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고인은 ‘길은 우리 앞에 있다’, ‘석양에 홀로 서서’, ‘링컨의 일생’, ‘한국 청년에게 고함’ 등 평생 1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고인은 생전 서약에 따라 시신을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서대문구 자택은 누나인 고(故) 김옥길 여사가 총장을 지낸 이화여대에 기부한다. 유족으로는 누이인 옥영·수옥씨가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고,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김옥길기념관에 마련될 예정이다. 발인은 오는 7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