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최소 6개월 동안은 M&A가 줄어들 겁니다.”
국내 한 대형 회계법인의 인수·합병(M&A) 분야 관계자의 진단이다. 국내 M&A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글로벌 긴축 기조의 여파로 국내 3분기 M&A거래 규모가 지난해 대비 8조원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7조7000억원 가량 줄었던 올해 상반기에 이어 타격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조달금리 상승에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모투자펀드(PEF)들이 투자를 미루는 데다 매물 가격이 더 낮아질 것으로 기대 중인 대기업도 관망에 나선 여파가 현실화되고 있다.
M&A 업계에선 올해 4분기에 이어 내년에도 위축된 분위기가 계속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금리인상이 M&A 시장 위축의 주 요인인 만큼 기조에 큰 변화가 있기 전엔 예전 같은 거래량을 회복하기 힘들거란 예측이다. 다만 규모가 큰 대기업이나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경우 오히려 매물확보 기회를 노리는 곳도 여전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6일 딜로직이 이투데이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3분기 국내 M&A 규모 136억7200만달러(약 19조3700억원)로, 지난해 3분기 192억3400만달러(약 27조25400억원) 대비 28.9%(55억6200만달러·7조9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시장에서 진행된 M&A(Domestic)와 해외기업 자본이 국내 기업에 투자(Inbound)한 규모를 합한 금액이다.
거래 규모가 급감했던 올해 상반기의 분위기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M&A 규모는 약 39조7859억 원(304억6400만 달러)로, 지난해 상반기 약 47조5300억 원(363억9400만 달러) 대비 16.3%(약 7조7400억 원) 감소한 바 있다.
M&A 시장 호황기였던 지난해와 대조된다. 지난해 국내 M&A 딜 규모는 477억달러(약 59조 원)를 넘기며 전년 대비 16% 늘어난 바 있다. 지난해 3분기 192억달러에서 4분기 366억달러로 급증했으나 올해 들어 1분기(190억달러), 2분기(120억달러), 3분기(137억달러)로 반토막났다. 올해 상반기 국내 M&A 규모는 코로나19의 타격이 컸던 2020년을 제외하고 최근 5년래 가장 낮았다.
해외 자본의 M&A도 타격을 받고 있다. EY한영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아시아-태평양 지역 조달 금액은 4030억 달러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14%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M&A가 중단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인수에 나섰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최근 인수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최근까지 매도자인 브룩필드자산운용과 새로운 조건을 논의 해왔으나 최종 결렬되면서 이행보증금 2000억원에 대해 법적 공방을 다투게 됐다. 이외에도 카카오모빌리티는 매각 협상이 중단됐고, 한온시스템의 매각도 1년째 미뤄지고 있다.
M&A업계에서도 지난해와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 중이다. 금리인상 기조로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으면서 투자에 보수적인 의견을 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란 평가다.
김규현 딜자문기업 MMP 대표는 “결국 인수 자금이 풍부해야 거래가 성사되는데 최근 금리로 인해 사모펀드도 펀드레이징이 어렵고, 펀드레이징이 필요없는 대기업들도 일단 지켜보는 성향이 있다”며 “기다리면 밸류에이션이 더 저렴해지지 않겠냐고 보는 곳이 많아 인수자측에서 시간을 끌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많이 생긴 중소형 사모펀드들의 경우 현금 잔고가 많은 곳이 아니라 프로젝트펀드로 투자를 해야 하다보니 출자기관(LP) 모집 설득이 어려운 상황에서 엄청나게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면 상황이 변화할때까지 기다리자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금리 인상기조가 M&A 거래를 위축시킨 근본 요인인 만큼 당분간 거래 규모 회복은 어려울 거란 예상도 나온다.
국내 한 회계법인 M&A 부문 관계자는 “글로벌한 유동성 축소, 인플레이션, 금리상승 등 경기 악화에 대한 컨센서스로 인해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라며 “투자자 측면에선 금리인상으로 인한 자금조달 비용 증가와 레버리지 활용 축소가 가장 직접적인 M&A 제약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도인 측면에서는 아직 밸류에이션 기대치가 낮아지지 않아 가격 격차(price gap)가 있는 상황”이라며 “경제 지표가 안정화되는 시점이 돼야 M&A거래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시장 분위기를 매물확보 기회로 삼는 곳은 여전할 거란 분석도 있다. 강달러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해외 투자자나 해외 LP로부터 자금을 조달받는 투자자도 국내 투자를 계속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규현 대표는 “셀러 우위에서 바이어 우위 시기로 오고 있는 만큼 매물을 합리적으로 살 수 있어 (M&A를) 깊게 검토 중인 곳들도 많은 상황”이라며 “회사를 매각하고 싶다는 중소기업쪽 니즈가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