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환율 방어에 달러를 대거 투입한 데다 강달러로 유로화 등 다른 통화자산 가치가 낮아진 영향이다.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감소 추세가 빨라지면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신흥국들엔 위기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한은이 6일 발표한 9월 말 외환보유액은 4167억7000만 달러로, 전월보다 196억6000만 달러 줄었다. 금융위기 당시 2008년 10월(274억 달러) 이후 13년11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외환보유액은 3월 이후 4개월째 내리막이다가 7월 반등했으나 8월과 9월 두 달 연속으로 빠졌다. 작년 말 4631억2000만 달러에 비하면 463억5000만 달러나 급감했다.
문제는 강달러로 이런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12.25까지 치솟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사실상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환율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정부는 환율 방어에 나설 것이고 외환보유액은 더 줄어든다. 2018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 한은은 외환위기 가능성을 일축하지만 우려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외화자본 대거 유출로 신흥국들의 도미노 금융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각국에 제공한 차관 규모가 1400억 달러(약 199조 원)에 이른다. 합의한 차관까지 포함하면 규모가 총 2680억 달러(약 381조 원)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파키스탄은 이미 11억 달러를 받았으며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인 아르헨티나는 410억 달러를 받는다. 다른 여러 나라도 IMF와 협상 중이다.
물론 우리는 이들 상황과는 다르다. 우리 외환보유액은 현재 중국, 일본, 스위스, 러시아 등에 이어 세계 8위 규모로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말(2012억2000만 달러)의 두 배 수준이다. 우리 경제의 대외건전성도 양호하다. 2014년부터 해외의 빚보다는 투자 자산이 많은 대외 순채권국이다. 국내총생산(GDP)의 37%에 이르는 대외자산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3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무역적자에 경상수지까지 적자로 돌아서면 환율상승과 외화유출 압력이 더 커진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미 외국인 ‘셀코리아’ 조짐이 뚜렷하다. 9월 한 달간 약 2조6800억원이 빠져나갔다. 주요국 중 일본 대만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외환보유액 대비 41.9%에 달하는 단기외채도 리스크다. 게다가 우리 경제는 무역의존도가 높고 시장 개방성이 높아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다. 외환보유액 감소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한·미 통화스와프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지만 진전이 없다. 정부는 낙관론을 펼 게 아니라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한 비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