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상황에도 검찰→법원 거쳐야 경찰 움직여
가정폭력을 휘둘러 접근금지 명령 처분을 받았지만,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남편 A씨가 지난 6일 구속됐습니다. A씨는 지난 4일 오후 충남 서산시 동문동 길거리에서 아내를 향해 흉기를 수차례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앞서 아내는 A씨에게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다며 지난달 1일부터 경찰에 네 차례나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아내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했고, 법원은 경찰의 신청을 받아들여 지난달 19일 A씨에게 아내로부터 100m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접근금지도 명령했습니다. 이러한 경찰과 법원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A씨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2018년에 발생한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도 위 사건과 유사한데요. 이 사건의 피해자 역시 전 남편 B씨로부터 극심한 폭력에 시달리다가 두 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결국 B씨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이처럼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져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하는 일이 늘어나자 해당 조치가 유명무실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접근금지 명령은 가정폭력 등의 범죄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법원이 내린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접근금지 명령에 대한 강제력이 없고, 처분을 받은 가해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도 어려워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번 사안도 피해자가 네 차례나 신고했지만 참극을 피할 수 없었다.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경찰이 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가해자를 의무적으로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하지만 우리 법 구조를 보면 검찰의 판단을 거쳐 법원이 명령을 내려야 경찰이 가해자를 유치장에 잡아 가둘 수 있다”며 “이렇게 이중, 삼중의 장벽이 있으니 피해자의 긴박한 위험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거나 대처할 수 없게 돼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경찰이 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무적으로 체포하고, 사후에 법원의 판단이나 승인을 받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입니다.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정폭력의 경우 통계적으로 10년 이상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증거”라며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전자발찌도 함께 부착해 가해자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그 정보를 부처 간에 공유해서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