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는 11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OPEC+ 회의 며칠 전, 미국 정부 관계자가 사우디와 다른 걸프만 연안 산유국에 감산 결정을 한 달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사우디의 감산 결정은 분명한 러시아 편들기이며, 가뜩이나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가 더 악화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한 달 연기 요청은 11월 미국 중간선거 직전까지 감산 결정을 미룬다는 의미고, 고물가로 악화한 여론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 수 있었다고 WSJ는 평가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미국의 요청을 무시하고 결국 하루 200만 배럴 감산 결정을 내렸다.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의 연기 요청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에미리트 관계자는 감산 결정을 막기 위해 사우디 및 미국과 강도 높은 소통을 이어갔다. 다른 회원국인 쿠웨이트, 이라크, 바레인 역시 감산 결정을 반대했다. 고유가가 경기침체를 부채질해 결국 원유 수요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들의 반대는 강경한 사우디를 꺾지 못했고 OPEC+ 단결을 위해 감산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사우디가 OPEC+의 감산 결정을 주도한 셈이다. 여기에는 러시아의 로비가 있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OPEC+의 감산 결정에 대해 “균형 잡혔으며 사려깊은 계획”이라고 여유를 부렸다.
고물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바이든이 7월 사우디까지 날아와 지원사격을 요청했지만, 빈 살만 왕세자를 움직이지 못했다. 왕세자는 8월부터 하루 50만 배럴 증산하려던 사우디의 계획을 묵살하고 10만 배럴로 낮추라고 명령했다.
사우디의 결정이 기대에 못 미치자 미국은 불만을 표했다. 아모스 호흐스타인 미 국무부 에너지 안보 특사는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에게 약속을 어겼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여기에 화가 난 압둘아지즈는 하루 10만 배럴 증산마저 없던 일로 만들었다. 지난5일 회의를 앞두고는 OPEC+ 회원국에 전화를 걸어 대폭 감산을 종용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은 “OPEC플러스의 결정은 전적으로 경제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며 정치적인 고려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시장 안정과 생산자 및 소비자의 이익을 고려한 것”이라며 “미국과의 관계는 오래 지속된 전략적 관계로 양국 군사 협력을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우선 이달 말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포럼 불참을 검토 중이다. FII는 ‘사막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대규모 국제투자회의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해 2017년 처음 개최됐다. 다음 주 걸프협력회의(GCC)의 지역 방어 관련 실무그룹에도 참석하지 않을 전망이다.
미 의회도 행동에 착수했다.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를 즉시 중단하는 법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로버트 메넨데즈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은 “내 직위를 이용해서라도 향후 사우디 무기 판매를 차단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한 국가를 지도에서 없애려는 전쟁 범죄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유 세계 사이에서 모두를 선택할 수는 없다”며 “사우디는 이기심으로 결국 전쟁 범죄자를 택했다”고 비난했다.
일부 의원들은 사우디에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또 양당 상원 지도부는 사우디를 포함한 OPEC+를 불법 가격 담합 혐의로 고소하는 법안을 지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