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의도치 않게 두 적수를 상대하고 있지만 더 거슬리는 건 역시 중국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 의중을 12일(현지시간)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분명히 드러냈다. NSS는 미국의 대외전략 방침을 천명한 문서로, 1980년대 이후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정기적으로 수립·공표돼 왔다.
바이든 정부는 48페이지 분량의 NSS에서 중국을 자국의 유일한 경쟁자로 꼽았다. 러시아도 즉각적인 위협으로 평가했지만, 중국과는 다른 도전이라고 봤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증명하듯 러시아는 국제질서의 근간을 뒤흔들면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시스템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에 대한 경계 정도는 초안을 작성했던 작년 12월보다 약해졌다.
중국에 대해서는 국제질서를 재편성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외교·군사·기술력을 점차 증진시키고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도 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첨단 로직, 메모리칩, 장비 등 특정 기술의 기본적 특성을 감안하면 우리가 가능한 많은 부분에서 앞서야 한다”고 말했다. 프리드먼은 외교적 수사일 뿐 속뜻은 “3가지 반도체 영역에서 중국이 미국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컨설팅업체인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의 기술정책 책임자인 폴 트리올로는 “고성능 컴퓨팅을 사용하는 중국의 능력에 본질적으로 전쟁을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최근 수년간 중국의 잠재적 위험성을 우려하며 반도체 통제를 시도했다. 대표적인 게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테크놀로지 제재였다. 고강도 규제로 화웨이가 첨단 반도체 확보하는 길을 막았다. 그 결과 화웨이는 19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 성장세가 꺾이는 진통을 겪었다. 미국의 수출 제한 리스트인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 수가 2018년 130개에서 2022년 532개로 4배 늘었지만, 그동안 대중국 반도체 제재는 특정 기업을 겨냥한 ‘핀셋’ 조치였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기술의 신속한 ‘디커플링’을 주장하는 제재론자들이 점진적 통제를 옹호하는 중도론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 결과 생명공학, 제조, 금융 등 다른 분야에서도 더 가혹한 대중 제재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포린폴리시 표현대로 미국은 지금 중국 제거에 ‘올인(All-in)’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