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잿빛 그림자가 드리웠다. 올해 초만 해도 증권사들은 코스피가 연내 3400~3800으로 오를 것이라고 낙관했다. 장밋빛 전망에 취해 너도나도 돈을 빌려 주식과 코인,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 투자한다는 ‘영끌’ 투자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그 와중에 20·30세대의 부채가 가파르게 늘었다. 최근에는 은퇴를 앞둔 50대들까지 빚투에 뛰어들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50대 이상 투자자의 신용융자잔고 규모는 8조2697억 원으로 30대 미만 투자자(3210억 원)의 25.76배나 됐다.
하지만 코인·주식·부동산의 3대 자산 거품이 꺼지는 징후가 한층 짙어졌다. 코스피는 올해 들어서만 25%나 급락했다. 소위 ‘네카오’(네이버와 카카오)로 불리는 한국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는 날개 없는 추락을 한다. 계속되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비트코인은 1만8000 달러 선을 위협받는 등 가상화폐도 거품이 빠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가격 하락이 가파르다. 10월 2주(10일 기준) 주간 서울 아파트값은 0.22% 떨어졌다.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 5월 마지막 주 0.01% 내린 이후 20주째 내림세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한국은 3% 성장으로 당시 OECD 가입국 중 셋째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국가의 재정 건전성이 높았고 가계 부채도 미국 등에 비하면 양호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나랏빚은 1030조 원에 달하고, 가계 부채는 1900조 원에 육박한다. 은행 기업대출 잔액은 1155조 4608억 원 규모다. 정부와 가계·기업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라 전체가 금리 인상에 취약한 구조가 됐다. 미국이 11월 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투자자·채권자는 자금이 제대로 순환될 땐 좋은 친구지만 회수불능 위험에 처하면 저승사자로 돌변한다. 자산 하락률이 기준을 초과하면 예외 없이 처분하는 로스 컷(loss cut)은 칼날 같고, 신용등급이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부채약관(debt covenant)에 따른 일시상환 요구는 총알 같다고 했다. 정부는 괜찮다고만 말할 게 아니다. 투자는 기본적으로 개인 책임이지만, 채무자의 충격을 완화할 맞춤형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