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별도 질의응답 받지 않아…“직원 의견 반영한 대책인지 의문”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계열사 SPL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와 관련해 유가족께 사과하며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1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별도의 질문은 받지 않는 등 이번 사과로 SPC 불매운동이 수그러들지 의문이다.
허 회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SPC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인과 유가족께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거듭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지 나흘 만에 공개석상에서 사과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황재복 SPC주식회사 대표, 황종현 SPC삼립 대표, 이명욱 파리크라상 대표, 도세호 비알코리아 대표도 참석했다.
허 회장은 “관계 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 사고 원인 파악과 후속 조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어 “유가족분들이 슬픔을 딛고 일어서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예우해 드리기로 하겠다”며 “사고가 발생한 SPL뿐만 아니라, 저와 저희 회사 구성원들 모두가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의 엄중한 질책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
사고 발생 이후 바로 다음 날 공장이 가동된 것에 대해서는 “이는 잘못된 일이었다”며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사죄했다.
허 회장은 “고인 주변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의 충격과 슬픔을 회사가 먼저 헤아리고 보듬어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 직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 회견에서 SPC그룹은 전사적인 안전관리를 강화하고자 향후 3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세부적인 대책으로 △전사적인 안전진단 △안전경영위원회 설치 △안전관리 인력과 역량 강화 △근무환경 개선 등을 시행하겠다고 SPC는 밝혔다.
전사적인 안전진단의 경우 SPL 외 그룹 전 사업장에 대해 고용노동부로부터 지정받은 외부 안전진단 전문기관을 통해 ‘산업안전보건진단’을 즉시 시행한다. 황재복 대표는 “진단결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종합적인 안전관리 개선책을 수립해 실행하겠다”고 했다.
또 안전시설 확충 및 자동화 등을 위해 700억 원, 직원들의 작업환경 개선 및 안전 전문화 형성을 위해 200억 원을 투입한다. SPL은 영업이익의 50% 수준에 해당하는 100억 원을 산업안전 개선을 위해 투자한다.
안전경영위원회와 관련해 황 사장은 “전문성을 갖춘 사외 인사와 현장 직원이 참여하는 안전경영위원회를 구성해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독립된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안전관리 강화는 물론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 문화를 정착시켜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사과문과 안전대책 방안을 발표했지만, SPC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약해질지 의문이다. 기자회견이 열린 이날 SPC 본사 사옥에서는 고인의 추모 시위가 이어졌다. 사망 사고의 유족들은 사고 경위를 명백히 밝혀달라며 이날 고용노동부와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온라인상에서는 SPC 불매운동이 계속 퍼지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트위터에는 SPC 불매 트윗이 5000건 이상 올라왔다.
특히 허 회장과 경영진들은 기자회견에서 별도의 질의응답을 받지 않은 채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SPC 측은 “고용노동부와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별도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오연춘 조직국장은 “1000억 원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 이야기하지 않는 등 형식적인 사과에 그친 것 같다”며 “SPC가 약속을 지키는지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1000억 원을 투자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하지만 대책을 내놓은 과정에서 직원들이 요구하는 의견을 반영했는지 등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