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계열 제빵공장 SPL에서 발생한 ‘혼합기 끼임 사망사고’와 관련해 유족 측이 사측을 상대로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이에 더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8일, 허영인 SPC 회장이 안전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직접 사과한 지 이틀 만에 또다른 계열사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하면서 모회사인 SPC의 책임론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23일 경기 평택경찰서에 차려진 ‘SPC 계열사 사망사고 수사전담팀’은 유가족을 상대로 고소인 조사를 진행했다.
이날 조사와 관련해 유족 측 법률 공동대리인(윤여창‧신동협 법무법인 동인, 오빛나라 변호사) 중 한 명인 신 변호사는 “같은 기계에서 5년 내 17명에 대한 사망사고가 발생할 만큼 위험한 환경”이라며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유족 측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SPL 안전관리책임자를 고용노동부와 경찰에 고소했다. 15일 SPL에서 20대 A 씨가 냉장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소스를 만들던 중 재료를 섞는 교반기에 끼여 숨졌다. 배합기 안으로 몸이 빨려 들어갔지만 안전장치도 없었고 구해줄 수 있는 동료 직원도 옆에 없었다.
경찰은 작업장과 작업자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유족 측 역시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사측이 근무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등을 먼저 파악할 방침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 소재가 모회사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20일 SPL 공장 본사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섰다. 아직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이지만, 사고 당시 회사가 제대로 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 알려지며 사측의 책임이 상당하다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해당 작업은 비상 상황을 대비해 2인 1조로 작업하게 되어 있지만, 사고 당일 피해자는 홀로 작업하고 있었다. 사고 일주일 전 같은 평택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손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사측은 추가 안전교육이나 사고예방조치를 하지 않았다.
업무상과실치사는 물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볼 여지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4조 2항과 5조에서 말하는 안전 확보 의무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혼합기에 몸이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허 회장이 직접 사과에 나섰으나 23일 SPC 계열사 샤니 제빵 공장에서 40대 근로자가 기계에 손이 끼어 손가락이 절단된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샤니 공장의 안전 수칙 위반 여부는 추후 경찰 수사로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만약 SPL 공장 교반기에서 일어난 사고처럼 별도의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 된다면 국민적 비판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모회사인 SPC까지 법적 처벌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SPL과 샤니는 SPC 그룹 계열사이지만 독립된 기업이기 때문에 사고의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계열사 대표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제빵공장 사망사고 전 교반기 안전인증을 해준 것으로 알려진 산업안전공단 측도 이번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SPL 평택공장은 2016년 최초로 안전경영사업장 인증을 받은 뒤 2019년과 올해 5월 두 차례 연장까지 받았다. SPL 사업장 업무상 재해의 40.5%가 끼임 사고였음에도 공단은 안전인증을 해준 것이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서도 공단은 SPL에 ‘끼임’ 사고와 관련해 △배합기에 운전버튼을 양수조작식으로 변경 △전동자키 아래쪽에 끼임을 방지하기 위한 고무덮개 설치 △컨베이어에 끼임 방지를 위해 덮개 설치를 권고했다. 당시 SPL이 권고를 받아들였다면 이번 끼임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