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기득권층에 해당하는 한 인물은 이코노미스트에 “모스크바 식당에서 분노에 찬 대화들이 오가고 있다”며 “푸틴이 실수했고 패배했다는 걸 모두가 깨닫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번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탈환 지역을 넓히고, 러시아인들이 도망가듯 나라를 빠져나가는 가운데 서방사회가 똘똘 뭉쳐 푸틴의 ‘협박’에 전혀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다.
과거에도 위기는 있었다. 2000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침몰해 승조원 118명이 사망했다.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극이 벌어져 333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푸틴은 강인한 지도자상을 각인시키며 부활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치체제가 소련 붕괴 이후 가장 심각한 혼돈의 시기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러시아 정치 애널리스트인 키릴 로고브는 “푸틴이 러시아를 통치한 지난 23년간 지금과 같은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작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초기만 해도 기득권층은 푸틴이 설마 패배할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2월 24일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탱크로 밀고 들어가면서 전면전을 택하자 기득권층도 충격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초반 러시아의 공세, 경제 붕괴 모면, 평화협상 시도를 지켜보면서 긴장을 풀었다.
믿음은 푸틴의 부분 군동원령을 기점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군동원령 자체가 푸틴이 주장한 ‘특별군사작전’이 꼬이고 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군동원령 이후 러시아 남성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보여주듯, 이번 전쟁을 ‘위대한 애국전쟁’으로 전환하려던 푸틴의 꼼수조차 먹혀들지 않았다. 푸틴이 징집을 통해 국가를 더 깊은 수렁으로 빠트리고 있다는 인식만 커져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는 많은 것을 잃었다. 군사적으로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서방의 경제 제재 효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비심리는 하강 중이다. 대부분의 유능한 인력은 러시아를 빠져나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도 푸틴 집권 하에서 전쟁 이전의 평화로웠던 삶의로의 복귀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기득권층이 ‘위험분자’로 변한 푸틴을 언제까지 지지할지 알 수 없게 됐다.
압바스 가리야모프 정치 애널리스트는 “향후 수주 혹은 수개월 내 기득권층이 푸틴 체제 유지가 자신들의 손에 달렸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라며 “후계자 모색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푸틴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푸틴을 다른 기득권층으로 교체하면 전쟁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보는 건 순진하다”며 “제국적 민족주의의 악순환을 끝낼 유일한 길은 러시아가 권력을 분산해 의회공화제로 변신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서구권에서는 푸틴이 힘을 잃고, 러시아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