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이태원 참사는 주최 측이 없어 책임 소재를 따지기도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경찰과 공무원들이 그 역할을 다 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들의 과실이 드러나게 되면 법적 책임을 묻고 배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1일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향후 공무원들과 정부의 책임이 드러나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검찰 공안통 출신인 한 변호사는 “이번 이태원 참사는 주최자가 없어서 그 누구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가 어려울 수는 있다”면서도 “매년 핼러윈마다 관례처럼 이태원 거리에 많은 인파가 몰렸고 관계 공무원들은 이를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면 업무상과실치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쏟아지는 폭우에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공무원들에게 유죄가 선고된 바 있다. 2020년 부산 초량 지하차도 참사는 관계 공무원들이 관리를 소홀히 해 일어난 참사다. 당시 초량지하차도가 폭우로 침수되며 시민 3명이 사망했다. 검찰은 담당 공무원 1명을 구속기소, 10명을 불구속기소했고 법원은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담당 공무원의 관리 책임을 이태원 참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는 더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공무원과 정부가 사고를 예상할 수 있었지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향후 이들의 법적 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다.
관계 공무원들의 책임을 넘어 주변 여러 요인들이 간접적인 영향도 책임을 미쳤는지도 따져 봐야 한다. 과거 대형 재난 사고에 주로 등장하는 이론이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다.
법원은 성수대교와 상품백화점 붕괴 사고와 같은 대형 재난 사고에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때 법원은 사건 관계자들에게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적용했다. 각 단계별 책임자들의 일부 과실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지라도 이런 것들이 합쳐지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면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성수대교를 시공한 회사 현장소장과 사업소장 등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등의 공동정범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시 도로국장과 공사감독관 등 발주청인 서울시 공무원들도 함께 처벌받았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도 대법원은 각 단계별 관련자들을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했다. 시공 과정과 경영 전반에 책임이 있는 삼풍백화점 경영진과 설계와 공사에 관여한 건설사 관계자들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삼풍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설계변경을 허가해준 서초구청장과 서울시 관계자들은 뇌물수수죄를 적용받았다.
다만, 이태원 참사에도 과실범의 공동정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대형 참사 사건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공동정범이라는 것은 다른 주범이 있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라며 “이태원 참사는 주범(주최자)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공동정범 이론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앞서의 공안통 출신 변호사는 “공동정범은 공동으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개념으로 공동정범 자체가 주범”이라고 했다.
이에 더해 공안통 출신 변호사는 피해자 유족들의 국가배상 소송은 형사소송보다 수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변호사는 “형사소송은 책임 입증이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이정도의 사안이면 민사소송으로 진행되는 국가배상 소송은 그나마 기대해볼 수 있다”며 “피해자가 112에 신고한 통화내역과 상해가 발생한 부분을 증명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배상 소송은 경찰의 직무에는 국민의 신체 보호가 있는데, 이러한 부분을 폭넓게 적용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어서다. 실제 2015년 민중총궐기에서 경찰 살수차가 쏜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故) 백남기 농민의 유족이 국가와 경찰관 5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