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경찰·소방 보고 늦어"…현장선 병력 문제라는데 사라진 '윗선'
156명이 숨지고 157명이 다친 이태원 참사가 ‘정부 책임론’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정부는 ‘정부 책임’을 ‘경찰 책임’으로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행안부 “이태원 사고, 행안부에 보고 안 돼”
박종현 행정안전부 사회재난대응정책관은 2일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오후 6시 30분쯤 현장에 있던 시민이 경찰에 신고했는데, 이 최초 신고가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접수되지 않았다”며 “이후 이태원 사고 상황은 당연히 전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청에 접수된 최초 신고(오후 10시 15분)도 30분이 지나서야 행안부 상황실에 보고됐다고 부연했다. 보고가 늦어 행안부가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검수완박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갈등으로 야권과 대립하고 있는 검찰도 경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는 길에 “대단히 엄정한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 개정으로 검찰이 직접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부분에서 대형 참사가 빠지게 됐다”며 “시행령을 통해 검찰이 경찰의 범죄 자체를 수사할 수는 있지만, 참사의 범위가 넓기에 검찰이 잘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에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참사 발생 당일 이태원파출소에 근무했던 현직 경찰관은 경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용산경찰서에서 서울청에 기동대 경력(경찰병력)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현장 대응 미흡’을 지적한 데 대해선 “열심히 일한 용산서 직원들이 무능하고 나태한 경찰관으로 낙인 찍혔다”고 반발했다.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광관리관은 “감찰이나 수사 대상의 범위는 현장뿐 아니라 지휘라인 전체가 포함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사라진 ‘윗선’, 뒤늦은 ‘사과’
경찰병력 운영을 결정하는 ‘윗선’은 참사와 거리를 두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과 한남동 대통령 관저, 집회 현장에 경찰병력을 과다 투입해 현장 대응여력을 축소시키고, 그나마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이 치안·질서 유지보단 마약 등 범죄 단속에 집중하도록 한 건 결국 윗선의 의사결정이란 점에서 비판이 나온다. 마약에 대한 경찰력 집중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각각 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현장 경찰들을 징계하고, 김건희 여사의 ‘허위이력’ 의혹을 불송치 결정한 윤 대통령의 충신이다.
특히 정부는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실언 등으로 정부 책임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무총리실과 행안부는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하도록 지시했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이틀 뒤 언론 인터뷰에서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며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주최 측이 없어 ‘축제’가 아니라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일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책임을 묻는 질문에 농담성 발언으로 답했다.
뒤늦은 사과도 논란거리다. 사고 직후 사과와 거리를 두던 한 총리와 이상민 행안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박 구청장 등은 사나흘이 지나서야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사전·초기대응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정부 책임론’이 대두되고, 잇따른 당국자들의 실언으로 논란이 확산한 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책임을 덜어내기 위해 사건을 축소·은폐·조작하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며 “현재 정부의 고위 책임자들의 태도는 도저히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