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 핵무기 현재 전황에서 비효율적”
EMP는 적 작전지휘체계 마비시켜
특히 핵EMP 사용 가능성 무게
로저 파르도-마우러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EMP 공격 가능성은 최근 한 러시아 국영 TV 토크쇼에서 자세히 설명됐으며 심지어 실행 가능성도 거론됐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토크쇼에서 러시아군 고위 간부가 방송에서 지도와 차트까지 동원하면서 상공에서 EMP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는 것이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물론 러시아군 관계자들은 “불특정한 군사적·기술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다소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위협을 해왔는데, 이것이 전통적인 핵무기 공격이 아닌 EMP 공격일 수 있다고 파르도-마우러 전 차관보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폭발을 일으키는 데 사용되는 전술 핵무기는 게릴라전과 재래식 전쟁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재 전황에서는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EMP는 강력한 전자기파로 컴퓨터에서부터 위성, 라디오, 레이더 수신기 등 각종 전자기기 내부의 회로를 태워 적의 작전지휘체계 마비시키는 무기다. EMP 공격을 하면 특별한 이동이나 통신 없이도 우크라이나의 군사 인프라는 물론 민간 각종 시설을 무력화할 수 있다.
파르도-마우러 전 차관보는 러시아가 EMP 중에서도 재래식이 아닌 핵을 이용하는 방식인 핵ENP 사용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핵EMP는 소형으로 러시아의 지르콘 극초음속미사일과 순항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치가 쉽다. 어떠한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인명 피해가 없이도 단 한 발에 지상의 전자기기 내부 회로를 태워 순식간에 석기시대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초강력 위력을 가진다.
당장 러시아군이 이번 주 철수한 요충지 헤르손을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가 EMP 공격을 단행하면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무용지물이 된 무기 대신 새로운 무기를 받기까지 손 놓고 당하게 될 수도 있다. 해당 지역의 댐 운영에서부터 도로 시스템 모두가 파괴되면서 민간인 피해도 커지게 된다.
파르도-마우러 전 차관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배치한 라디오, GPS, 공중 드론과 같은 거의 모든 군사·방위 장비는 운용과 배치, 유지 등 모든 측면에서 전자장치에 의존한다”면서 “EMP 공격으로 전자회로를 영구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자기 파급력이 3개월까지 지속하면서 공격받은 지역에 있는 인공위성 90%도 파괴될 위험이 있다.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이 러시아의 핵EMP 공격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군사 장비가 이러한 공격 가능성에 대비한 방어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공격을 받았을 때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파르도-마우러 전 차관보는 지적했다. 핵EMP가 쓰이는 전장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나토와 달리 러시아는 핵EMP를 핵무기가 아니라 사이버, 전자전 무기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푸틴이 핵폭탄 카드를 쓰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심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파르도-마우러 전 차관보는 “핵EMP 공격 시 나토의 집단 대응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러시아에 경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군이 EMP 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라디오, 손전등, 배터리 등을 비축하는 것을 포함해 공격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민을 교육할 필요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