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의 나라, ‘오징어게임’의 나라, 손흥민 보유국. 여기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들까지 있으니, 한국 주재 기자 입장에서 보자면 발제거리가 풍부하단 의미일 것이고, 소속 언론사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 관련 정보의 수요와 공급이 그만큼 많아졌으니 로컬 인력을 늘려야 할 상황임이 분명하다는 의미다.
지난달 말 핼러윈 데이를 이틀 앞두고 일어난 ‘10·29 참사’는 그야말로 ‘비극’이란 제목으로 외신들의 메인을 장식했다. 일부 관계 당국자는 잠이 들어 전화도 못 받았다는 그 시각에, 그들은 누구보다 발 빠르게 제 할 일을 했다. 외국인들이 몰리는 핫플레이스인 데다 핼러윈 축제까지 겹쳤으니 겸사겸사 현장에 나온 기자들이 적지 않았을 터. 사고가 일어나자 그들은 사진은 물론 영상까지 찍어 올리고, 타임라인을 만들어 현장 상황을 속보로 전했다. 얼마 되지 않아 상황 분석과 사고 원인 분석, 유사 사례, 심지어 8년 전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 사고까지 소환했다. 한국에서 오래 근무해 사정을 잘 아는 외국인 기자이거나 한국 국적 기자이거나. 그들의 발 빠른 보도에 적잖이 놀란 게 사실이다.
아쉬운 건 그 이후다.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조명하기 시작하면서 일부에서는 기사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졌다. 그들은 국내 언론들이 금기시하는 부분들, 너무 아파서 들추기도 조심스러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어떤 기사는 ‘서울 이태원의 밤 문화는 비극을 위해 세워졌다’는 경악스러운 제목까지 붙였다.
이태원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이미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팬데믹 초기 대규모 감염자가 나와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고, 문을 닫는 가게들이 속출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가 완화하면서 이제 좀 숨통이 트이나 싶었다.
그러나 157명의 목숨을 앗아간 갑작스러운 참사로 이태원에는 다시 슬픔과 적막이 흐르고 있다. 6일 국가 애도기간이 끝나고 12일에는 추모공간도 철거됐지만, 참사가 있었던 이태원 거리는 여전히 개점휴업상태다. 손님 발길이 끊기면서 생계유지도 위협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참사 당시 현장에 있던 상인들은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상인은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도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이런 힘듦을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외국인들이 많이 보는 한 여행안내책자에 ‘이태원&용산구(Itaewon & Yongsan-gu)’는 미군 기지, 햄버거, 매춘부, 클럽, 모든 성적 지향, 유흥, 박물관 등의 키워드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이 소개글 등을 보고 이태원을 찾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이태원이란 어떤 이미지였을지 감이 온다.
그리고 여기에 ‘10·29 참사’가 보태졌다. 벌써 구글에는 ‘이태원(Itaewon)’을 검색하면 ‘이태원 압사 사고’라는 자동완성 문구가 뜨고, 사용자 참여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는 ‘Seoul Halloween crowd crush’라는 페이지가 생성됐다. 100여 개의 관련 링크와 상세한 기록이 그날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외신의 메인에서 ‘10·29 참사’ 뉴스는 자취를 감췄지만, 후속 기사는 꾸준히 보도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번 ‘10·29 참사’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외국에 보란 듯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나라마다 애도의 방식이 다르듯, ‘애도’라는 명목으로 축제와 공연, 모임, 행사들을 전부 취소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북돋워서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정치권이 할 일은 슬픔과 분노를 선동해 잇속을 챙길 것이 아니라 속도감 있게 잘잘못을 가리고 미비한 시스템을 바로잡아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해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더는 외국인들이 ‘KOREA’를 떠올렸을 때, 미군기지의 나라, 세월호 참사, 핼러윈 참사의 나라로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