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FTX 파산, 리먼 형인가 엔론 형인가

입력 2022-11-1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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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보호신청한 가상자산 거래소 FTX는 2008년 금융위기로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를 연상시킨다.(AP연합뉴스)

한때 세계 1위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까지 넘봤던 FTX의 파산은 ‘코인판 리먼 쇼크’로 평가된다. 무리한 레버지리(차입비율)를 활용해 문어발식 투자를 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고레버리지 말고도 FTX 거래소의 내부자금 관리 부정 의혹이 불거지며, 2002년 분식회계로 파산한 ‘엔론 사태’와도 유사점이 발견됐다. 심지어 고객자금까지 투자에 활용했다고 의심되고 있어, ‘사상 최악의 횡령’이라는 불명예도 얻게 될 처지에 놓였다.

◇코인 판 리먼 사태

14일 블룸버그와 미국 법원 등에 따르면 FTX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며 신고한 부채가 최대 500억 달러(약 66조 원)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부채는 100억∼500억 달러(13조2000억∼66조2000억 원)이고, 자산도 부채와 같은 규모다. FTX에 대한 채권자는 10만 명 이상이다. 올해 가장 큰 규모의 파산보호 신청이며, 가상자산 거래소 파산 중에서도 사상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파산보호 신청 대상에는 FTX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인 알라메다리서치 등 130여 개 계열사도 포함됐다. 알라메다로 인해 발생한 FTX의 채무는 100억 달러(13조20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FTX의 파산이 업계 전반의 유동성 위기를 부르는 ‘코인 판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리먼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리먼 사태는 한때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가 위험 자산에 고레버리지로 투자한 것이 부실로 이어지며 2008년 금융권 전반으로 위험이 번진 사건을 말한다. 파산 이후 파급력이 컸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시스템 위기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FTX 사태가 리먼 파산과 닮은 점은 관계사(동일 설립자 및 최대주주) 알라메다리서치와 FTX의 무리한 투자가 꼽힌다. FTX의 자체 코인 FTT로 대부분의 자금을 보유했던 알라메다는 ‘루나 사태’ 이후 부실화된 가상자산 기업들을 사들이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FTX-알라메다 간 상호의존적 자금 상태가 위험하다고 알려지며 FTT 코인 가격이 급락했다. 투자금 대부분이 FTT 코인을 담보로 한 대출이었는데, 코인 가격이 하락하며 담보 청산과 코인 가격 하락의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다.

FTX 투자금 조달에 참여한 캐나다 온타리오 교원 연금,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헤지펀드 타이거글로벌 등은 각각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의 자금 회수가 불투명해졌다. 헤지펀드 세쿼이아캐피털은 이미 2억1400만 달러(약 2821억 원)에 달하는 FTX 투자금의 장부가치를 전액 손실 처리했다.

▲FTX가 파산함에 따라 FTX의 이름을 딴 경기장도 새 이름을 찾고 있다.(AP뉴시스)

◇분식회계·횡령·내부자 해킹 등 끝없는 의심

단지 무리한 투자로 FTX 사태를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FTX가 알라메다에 어떤 식으로 자금을 제공했는지와 그 많은 자금을 어디서 끌어왔는지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FTX 사태의 본질이 무리한 레버리지 투자뿐 아니라 부정 회계 처리였다는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 마치 엔론 사태 같다는 지적이다.

엔론은 1985년에 설립된 후 2007년에 파산한 미국의 천연가스 기업이다. 2001년에 파산보호신청(미국의 법정관리 절차)을 하고 2004년 파산보호에서 벗어났으나 2007년에 완전히 파산했다. 한때 미국 7대 기업으로 불릴 정도로 큰 기업이었다. 2001년까지는 건실한 회사로 알려져 미국 내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희대의 분식회계가 파산으로 이어졌다.

FTX는 알라메다와 투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FTT 코인 가격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이 자산을 고의로 과대평가해 재무상태를 손실에서 손익으로 조작하는 것은 전형적인 분식회계 방식이다. FTX와 알라메다는 FTT 코인의 발행과 유통을 관리하는 주체였다. FTT 코인을 통해 자산 가치를 마음대로 부풀릴 수 있었던 셈이다.

분식회계 말고도 투자자와 FTX 고객의 자금 횡령도 의심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FTX가 고객 자산의 출금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알라메다의 손실을 메우려고 160억 달러 규모의 FTX 고객 자산을 횡령했고, 이것이 파산의 결정타로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파산보호 신청 직후 발생한 해킹 또한 내부자 소행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코인 분석업체인 엘립틱에 따르면 FTX에서 해킹으로 유출된 가상자산 규모는 약 4억7500만 달러(약 6200억 원)에 달한다.

이번 자금 유출이 FTX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직후에 이뤄졌기에 샘 뱅크먼-프리드 전 FTX 최고경영자(CEO)와 측근들의 소행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크립토닷컴은 사상 초유의 가상자산 오송금으로 5000억 원이 넘는 자산을 잃을 뻔 했다.(크립토닷컴 로고)

◇줄 파산 공포로 확산

FTX를 시작으로 한 가상자산 위기가 다른 거래소까지 확산할 조짐을 보인다.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13일 크립토닷컴이 발행한 코인 크로노스는 24시간 전 대비 20%대 급락했다.

크립토닷컴은 거래량 기준 글로벌 15위권의 가상화폐 거래소다.

크로노스의 급락은 크립토닷컴 계좌에서 32만 개의 이더리움이 비슷한 규모의 게이트아이오 거래소로 송금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전된 양은 크립토닷컴이 보유한 이더리움 보유량의 80%를 넘는다.

크리스 마잘렉 크립토닷컴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에 “다른 계좌로 자금이 잘못 송금됐다”며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게이트아이오에서 4억 달러(5200억 원어치)의 이더리움을 회수했다”며 이더리움 32만 개가 오프라인 지갑인 새로운 ‘콜드 스토리지’(오프라인 보관소)에 옮겨질 예정이었지만, 외부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고 설명했다.

크립토닷컴은 또 고객 자금은 모두 ‘콜드 스토리지’에 보관돼 있고 ‘핫 월렛’은 기업 자산만을 위한 것이라고 회사 측은 덧붙였다.

‘핫 월렛’은 온라인에 연결돼 바로 출금이 가능한 지갑이고, 콜드 스토리지는 오프라인에 존재해 바로 출금이 안 되는 저장소다.

마잘렉 CEO의 해명에도 시장에선 중소형 거래소들이 파산할 수 있다는 공포로 뱅크런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코인 거래소들은 자산이 안전하다는 증명과 공지를 통해 고객 붙잡기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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