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동국대 석좌교수(전 농림축산 식품부 장관)
국제적으로 전쟁위기, 식량 위기, 기후변화 위기 등 각종 위기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과거에는 식량 위기를 중점 강조했었고 최근에는 에너지와 물 부족 위기, 기후변화 위기를 중점 인식했다. 현재는 코로나 19등 신종 바이러스 위기가 큰 충격을 준다. 예방 백신도 신뢰하기 어렵고 치료약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160만 개의 바이러스 중 정체가 파악된 것은 3000개에 불과하다. 더 위험한 것은 사람과 동물에 공통적으로 감염되는 인수공통 바이러스이다. 동물에 감염되는 가축 전염병이 사람에게 옮겨오는 경우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50만 종의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 중 밝혀진 것은 0.2%에 불과하다니 더욱 염려스럽다.
곡물 공급에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나타난다. 지구촌 저 멀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리나라 곡물 수급에 차질이 오고 사료 가격이 상승하며 각종 생활물가가 상승한다. 환율 상승, 원가 상승 등 대외요인과 겹쳐져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가격상승을 억제해 달라고 민간 부문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곡물 수입량이 지난해 1734만 톤으로 세계 6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안정적으로 곡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심각한 위기상황이 온다. 8월 농식품부는 ‘외부 충격에도 굳건한 식량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식량 기반을 확충할 다양한 계획을 추진한다. 해외 곡물 엘리베이터(곡물 유통 시설)를 확보해 안정적인 해외 곡물 수입망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 눈에 띈다. 기대를 하나 우려도 크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 곡물 조달 시스템을 추진했으나 그 이후 중단됐기 때문이다. 필자는 당시 aT 사장으로 이 사업을 추진했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비상시 대비 국민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고 해외공급망 확보를 위한 국제적 협조도 강화해야 한다. 곡물 수출국 정보를 파악하고 주요 교역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11월에 많은 국제회의가 개최된다. 아세안 정상회의는 10∼13일 캄보디아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18∼19일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다. 주요국 정상들이 직접 만나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경제회복과 공급망 확보, 지속 가능한 성장 등 다양한 현안을 논의한다. 양자, 다자간, 공식, 비공식 회담이 전방위로 전개된다. 우리 대통령도 꼭 참석하여 글로벌 위기 속의 공급망 확보를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글로벌 위기극복을 위해서도 ‘밧줄’이 필요하다. 비상시에 대비 ‘최소한 식량, 최소한 의약품’ 등을 준비해야 한다. 전쟁에 대비한 비상시 식량 보유량은 약 2개월 정도 버틸 수 있는 물량이다. 2개월 안에 전쟁이 종료되거나 국제적 공급망을 확보한다는 전제에서다. 현재 쌀 소비량 기준으로 우리는 60만 톤 정도를 비축해야 한다. FAO(국제 식량농업기구)는 총소비량의 17∼18%를 준비토록 권고한다. 국민 생활 여러 분야에서 실질적인 위기 대비책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건·사고나 위기 시마다 사람을 처벌하는 ‘목 치는 행정’을 넘어 실질적인 위기 대비를 하자. 사고 때마다 ‘대통령 책임’으로 몰아가거나 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는 악습을 고쳐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사고가 수시로 발생되고, 개별국가가 독자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글로벌 위기 시대에 이미 직면해 있다. 상황에 알맞은 ‘밧줄’을 각자 준비하는 시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