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고발장에 타인의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첨부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이 금지한 ‘누설’ 행위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지역 농업협동조합 전직 임원 A 씨는 2014년 8월께 경찰에 “조합장 B 씨가 농업협동조합법 위반 등 혐의가 있다”며 고발장을 제출했다. 조합원들에게 과일을 사주는 등 기부행위를 하고 화환이나 축의금‧조의금도 조합 명의가 아니라 개인 명의로 했다는 것이다.
그는 B 씨가 공판장 안에서 중도매인들을 통해 과일을 사는 장면 등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영상과 자신이 업무상 알게 된 사람의 이름‧주소 등이 적힌 꽃 배달 내역, 축의금‧조의금 송금 내역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A 씨가 나중에 자신이 조합장에 출마하면 필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근무 중 수집‧보관해온 자료들이다.
이 고발로 조합장 B 씨는 벌금 70만 원의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A 씨 역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고발 목적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제공‧누설한 혐의가 있다고 봤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개인정보를 제공‧누설한 사람에게는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이 요구되지 않는다”며 A 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고소‧고발을 위해 수사기관에 개인정보를 알려주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규정한 누설이 아니라며 무죄 판결했다.
대법원은 다시 판단을 뒤집었다. 2011년 폐지된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고소‧고발장에 다른 정보 주체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첨부해 제출한 것은 누설 행위가 맞고, 이는 이후 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법리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A 씨의 행위를 개인정보 누설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범죄 행위로서 처벌 대상이 될 정도의 위법성을 갖추고 있지 않아 위법성이 조각(범죄의 요건을 갖췄으나 범죄로 인정하지 않음)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2심이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