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들 수신금리 인상 경쟁에 제동을 걸었다. 채권 시장 내 ‘돈맥 경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으로만 자금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킹 통장에 뭉칫 돈을 넣어두고, 오는 24일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를 기다리던 ‘금리 노마드’(유목민)들은 허탈해 하고 있다. 은행들도 ‘과도한 손목 비틀기’라며 반발한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권에 수신금리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국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상승 기조여서 예금금리도 이를 거스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금리 조정을 너무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말아 달라는 차원”이라고 했다. 최근 예ㆍ적금 금리 인상으로 은행으로 시중 자금이 대거 몰리면서, 2금융권 유동성 부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이에 저축은행들은 자금 이탈을 막느라 울며 겨자 먹기로 예·적금 금리를 올리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이날 기준 국내 79개 저축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5.5%로 집계됐다. 10월 초만 해도 연 3% 후반대이던 저축은행 예금 금리는 지난달 약 보름 만에 1.5%포인트(p) 치솟으며 연 5%대 중반으로 뛰어올랐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자금이 급감하면서, 신용대출에 쓸 자금은 고갈 위기에 놓였다. 개인 신용대출을 3억 원 이상 취급한 저축은행은 올해 1월 38곳에서 9월 32곳으로 줄었다. 대출상품 수도 26개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리가 올라 부실 위험이 늘어난 데다 자금 조달 비용이 오르자 대출 규모 축소로 이어진 것으로 읽힌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예금금리 인상이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고물가와 고금리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산정 요인 중 저축성 수신상품 금리의 기여도가 80% 이상으로, 사실상 절대적이다. 예금 금리를 인상하면 대출 금리도 시차를 두고 상승하는 구조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로,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준이 된다.
10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98%(15일 기준)로, 공시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월간 상승 폭(0.58%포인트) 역시 가장 컸는데, 이는 9월 은행권 수신금리 인상을 반영한 것이다.
새 코픽스가 공시된 직후 주요 시중은행의 신규 코픽스 연동 주택담보대출의 금리 상단은 7%대로 오른 상태다.
예금금리를 인위적으로 억제할 경우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은행권은 은행채 발행이 제한된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예금 경쟁까지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건전성 규제 추가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은 매주 열리는 은행권 시장점검 실무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중장기 유동성 지표인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등 건전성 규제의 완화를 추가로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NSFR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등과 함께 바젤Ⅲ 체제 은행감독규정에 따라 도입된 유동성 규제다.
금융당국은 국제감독기준의 세부 요건을 바꿔 운용하면 국내 은행의 신인도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은행권의 규제 개선 요청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정책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를 검토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의 수신금리 인상 억제를 두고 대부분의 시민은 유독 예·적금 금리만을 억제하느냐는 반응이다.
한 시민은 “대출금리는 이미 다 올랐는데 무슨 헛소리”라고 비판했다.
다른 시민도 “세금 뜯어갈 땐 펌프질하고, 국민에게 주는 쥐꼬리만 한 이자는 아까워 규제하냐”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예대금리 마진이나 줄여라”, “공산당이냐. 사기업에 압박을 넣는 게 맞느냐”, “물가는 어떻게 잡을 것이냐” 등 대체로 금융당국의 조치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반면 “너무 급하게 올라가는 건 문제” “금리 인상도 필요하지만 가계, 기업 부채 경기침체 문제가 너무 많다”, “그만 올려라” 등의 당국 조치를 옹호하는 의견도 나왔다.
시민들이 부정적 의견을 내는 것은 금리 인상을 기다리며 ‘파킹(Parking)통장’에 자금을 넣어 놓은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파킹통장은 주차라는 영어 단어의 의미 그대로 자금을 잠시 맡겨 놓고 언제든지 입출금이 가능한 ‘자유 수시입출금 통장’을 뜻한다. 일반 입출금 통장과 달리 하루만 맡겨도 이자가 지급된다. 예치 기간이 짧아도 비교적 높은 금리를 챙길 수 있고 예치금액이나 기간, 입출금 횟수와 관계없이 약정이자를 받을 수 있어 선호도가 높다.
금리가 가파르게 인상되면서 앞으로 고금리 예·적금 상품이 나올 것을 기다리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직장인 이모(32·여) 씨는 “매일 토스뱅크 앱에 들어가 지금 이자 받기를 누르면서 커피값을 벌었다는 소소한 재미가 있고 일상생활에서 사용이 편리하다”며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는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어서 어느 곳으로 돈을 옮길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