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지병원 외래교수
만 20개월짜리 남아의 엄마인 그녀는 고된 육아로 회색빛 재로 변해가는 장작 같았다.
“유인원들은 아기일 때, 하루 종일 엄마에 매달려 지내기는 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원시부족들을 살펴보았더니, 엄마 혼자 육아를 도맡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해요.”
그녀의 눈빛에 의문 부호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이모, 여자형제가 많은 집안인 경우 영아 사망률이 훨씬 낮더라는 거예요.”
“….”
“우리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들은 원래 공동 육아로 양육을 해왔어요. 엄마 혼자의 노동으로 자녀를 키운다는 ‘모성 신화’는 생물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허구예요.”
“저희 부모님은 연로하시고, 형제라고는 남동생뿐이에요. 시부모님이 도와 주시는 건 불편하고요.”
“맞아요. 환경이 변했죠. 대가족 사회에서 핵가족으로, 또한 결혼 연령이 늦어지다 보니 부모님들도 노쇠하셔서 육아를 도와주시기 어렵고, 형제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남편이라도 잘 도와주면 좋은데….”
정말 그녀는 고립무원인 듯했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지요. 육아와 가사를 잘 하는 남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 와서 남편을 바꿀 수도 없지요.”
피어나려던 그녀의 눈빛이 다시 꺼져 가는 것을 보았다.
“다른 분들보다 더 힘든 조건이군요. 친정식구나 시댁의 도움도 받기 어렵고, 남편의 조력도 부족하고… 하지만, 그래도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공동육아’의 방법을 같이 찾아 볼까요?”
“어떻게요?”
“우선 아이와 같이 아파트 놀이터로 가서 나이가 비슷한 또래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그리고, 그 아이 어머니와 친해진 뒤 낮에 서로 번갈아 한집에서 같이 놀게 하는 겁니다. 혼자 볼 때보다 훨씬 편해지고 덜 외로운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또, 어린이집도 등록하시고요.”
“어린이집 가기엔 너무 어린데, 큰 아이들에게 치이고, 감기도 자주 옮아 온다던데요?”
“물론 집 떠나면 고생이지요. 하지만, 그러면서 사회 생활도 익히고 면역력도 길러지는 겁니다. 집에만 있으면 오히려 언어나 운동 발달이 더 느려져요. 자극이 적기 때문이죠. 엄마가 AI도 아닌데, 하루 종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고, 말을 가르치고, 놀아줄 수 있을까요?”
그녀는 요즈음 놀이터에서 만난 한 어머니와 친구가 되어 같이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훨씬 마음이 안정되고 아이도 밝아졌다고 한다. 또, 어린이집에 다닌 뒤로 낮에 외출도 하고 운동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요즈음 산소를 공급받은 장작처럼 다시 바알간 안색을 찾아가는 중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