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유명 투자자 피터 틸 투자로 주목
루나·테라 사태 당시 FTX 지원 받은 것이 毒 돼
제미니·제네시스 등 다른 대출업체도 ‘흔들’
가상자산(가상화폐) 거래소 ‘FTX 파산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가상자산 대출업체 블록파이가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구세주를 자처했던 FTX의 지원이 독이 돼버린 탓이다.
2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블록파이는 이날 미국 뉴저지주 트렌튼에 있는 파산법원에 연방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른 파산보호 적용을 신청했다. 지난 10일 고객들의 자금 인출을 중단하면서 사실상 영업 정지 상태에 빠진 지 18일 만이다. 이날 회사가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블록파이의 자산과 채무 총액은 최대 100억 달러(약 13조3800억 원)에 달한다. 채권자는 10만 명에 달한다.
2017년 설립된 블록파이는 가상자산을 담보로 고객에 돈을 빌려주는 업체로 실리콘밸리 유명 투자자 피터 틸이 이끄는 벤처캐피털(VC) 발라르벤처스 투자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발라르벤처스는 블록파이의 지분 19%를 보유해 최대 주주 중 하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블록파이는 올해 3월까지 총대출액이 470억 달러를 웃돌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블록파이의 이번 파산보호 신청은 FTX 파산 여파에 따른 것이다. 블록파이는 루나·테라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이 혼란에 빠졌던 지난 5월 ‘구세주’를 자처한 FTX의 지원사격으로 경영위기를 가까스로 막았다. 블록파이는 7월 FTX와 그 관계사 알라메다리서치에서 4억 달러 규모의 한도대출을 받기로 하고, 블록파이는 FTX에 자산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FTX에 대한 익스포저가 커지기 시작했다.
FTX의 지원은 블록파이에 오히려 독이 됐다. FTX가 이달 초 불거진 부실자산 우려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11일 파산보호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라메다리서치는 이달 초 블록파이에 빚진 6억8000만 달러에 대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냈다고 밝혔다.
마크 렌지 블록파이 재무 담당 고문은 파산보호 신청서에서 “안타깝게도 FTX의 ‘구조’는 오래 가지 못했다”면서 “블록파이는 FTX로부터 대출 거래에 따라 2억7500만 달러의 스테이블 코인을 받았지만, 우리가 요청한 추가 자금은 받지 못했다”고 적었다. 담보로 FTX에 맡긴 가상자산도 FTX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법정관리 대상이 돼버린 상태다.
전문가들은 그간 FTX가 업계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파산하면서 이로 인한 시장 충격과 신용 불안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미 FTX의 파산 충격파는 업계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FTX에 돈이 묶인 또 다른 가상자산 대출업체 제네시스도 파산 위기에 놓였다. 이 업체도 자체 확보한 유동성을 뛰어넘는 비정상적인 인출 요청이 쇄도하자 지난 16일 상환과 신규대출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제네시스는 FTX 계좌에 1억7500만 달러어치의 자금이 묶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자산 거래소 제미니도 고객이 가상자산을 맡기면 이자를 주는 ‘제미니 언(Gemini Earn)’의 고객 자금 상환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블록파이는 신속하게 챕터11을 종료하고 정상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회사 미래는 불확실한 상태다. 투자자들은 앞으로 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파산 절차를 기다려야 한다. 과거 사례를 비춰봤을 때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파산 절차는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