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나온 보험금이 원래 수령자로 지정된 자녀가 아닌 친권자인 부모에게 갔다면 보험회사에서 자녀의 부모에 대한 보험금 반환 청구권을 압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의 이 판결에 따라 보험사는 보험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기(旣)지급된 보험금을 회수할 수 없는 이상한 결과를 받아 들었다. 보험금이 잘못 나가기는 했으나, 대신 수령한 부모가 자녀 양육비 등에 적법하게 썼다면 남은 돈만 돌려줘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DB손해보험이 극단적 선택을 한 망인의 처 A 씨를 상대로 제기한 특유재산반환 추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남편 B 씨와 결혼하고 자녀 두 명을 두고 생활하다가 1998년 이혼했다. B 씨는 사망 시 보험금을 받는 내용의 보험계약을 2000년과 2005년 각각 DB손해보험과 체결했다. 계약에는 피보험자의 고의로 발생한 손해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B 씨는 2011년 6월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해 숨졌다.
자녀 두 명의 친권자이던 A 씨는 B 씨의 사망이 사고사라는 이유로 당시 미성년자인 자녀들을 대신해 약 1억7000만 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하지만 B 씨가 단순 추락이 아닌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밝혀졌고, DB손해보험은 두 자녀를 상대로 보험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DB손해보험은 확정 판결에 따라 이들 자녀들의 A 씨에 대한 보험금 반환 청구권과 관련,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은 뒤 A 씨에게 추심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모두 A 씨의 손을 들어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두 자녀들이 친권자에 대해 행사하는 보험금 반환 청구권은 일신 전속적인 권리이므로 압류가 불가능하다고 봤다. 자녀가 친권자인 부모에 갖는 보험금 반환 청구는 채권자인 제3자가 요구할 수 없고, 자녀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고 본 것이다.
특히 자녀 중 한 명은 성년이 된 후 반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친권자의 보험금 반환 의무를 면제해줬다고 간주했다. 다른 자녀의 경우에도 보험금이 양육비 등으로 충당됐다고 판단해 반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평가했다.
대법원 역시 자녀가 친권자의 보험금 반환 의무를 면제했다는 등 이유를 인정하면서 ‘원고 패소’라는 결론을 유지했다. 그러나 반환 청구권이 일신 전속적인 권리인지를 두고는 입장을 1‧2심과 달리 했다.
대법원은 “자녀의 친권자에 대한 반환 청구권은 재산적 권리로서 일신 전속적인 권리라고 볼 수 없으므로, 자녀의 채권자가 그 반환 청구권을 압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친권자가 자녀의 돈을 자녀 대신 수령한 경우 친권 종료 시 그 돈 중 정당하게 지출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자녀에게 반환해야 하며, 자녀의 이와 같은 반환 청구권이 재산적 권리로서 압류될 수 있는 권리임을 최초로 판시한 판결”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민법상 친권자는 자녀에 대한 재산 관리 권한에 기해 자녀에게 지급돼야 할 돈을 자녀 대신 수령한 경우 그 재산 관리 권한이 소멸하면 그 돈 중 재산 관리 권한 소멸 시까지 정당하게 지출한 부분을 공제한 나머지를 자녀 또는 그 법정대리인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
다만 이 경우 친권자가 자녀를 대신해 수령한 돈을 정당하게 지출했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은 친권자에게 있다. 즉 정당하게 지출한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