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한미·한독·SK바이오팜 등 미래 먹거리로 투자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게임업계 모두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한 신사업으로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의약품이 아닌 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 게임, 가상현실, 챗봇) 등을 활용해 질병이나 장애를 예방·관리·치료하는 기술을 말한다. 1세대 치료제인 합성 신약, 2세대 바이오 의약품에 이어 3세대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최근 동화약품이 디지털 치료제 전문 개발 기업 ‘하이’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하이는 디지털 바이오 마커와 인공지능(AI) 에이전트를 통해 진단에서 치료까지 가능한 디지털 표적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범불안장애 치료제 ‘엥자이렉스’의 확증 임상시험 승인을 획득했다. 동화약품은 이번 투자로 ‘엥자이렉스’ 등 하이가 개발 중인 디지털 치료제의 국내 판매권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갖게 됐다.
한미약품은 6월 KT와 함께 디지털 치료기기와 전자약 등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디지털팜’에 합작 투자했다. 디지털팜은 가톨릭대학교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로 지난해 11월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창업했다. 이들 회사는 첫 사업으로 알코올과 니코틴 등 중독 증상에 쓰는 디지털 치료제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분야 전자약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5월 미국 디지털 치료제 기업 ‘칼라헬스’에 투자했다. 칼라헬스는 디지털 치료제 내 생체전자의약품 분야 선도 기업으로 신경·정신 질환 치료에 적용 가능한 웨어러블 플랫폼 기술과 미국 전역 판매망을 보유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2018년부터 뇌전증 발작 감지·예측 알고리즘과 디바이스 연구를 개발 중이며 다중 생체신호 기반 웨어러블 디바이스 ‘제로와이어드’로 ‘CES 2023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한독은 2021년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웰트’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알코올중독과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를 공동 개발 중이다.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 ‘필로우Rx’는 지난해 식약처로부터 임상 승인을 받아 확증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게임 업계도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드래곤플라이는 지난달 디지털 치료제 ‘가디언즈DTx’ 의료기기 임상시험 계획서를 식약처에 제출했다. 가디언즈DTx는 만 7세 이상 13세 미만 환자를 대상으로 ADHD 증상을 개선할 수 있는 게임 형태의 디지털 치료제다.
엔씨소프트는 중앙대병원과 ‘디지털 암 관리센터’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8월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와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디지털 치료제 관련 정책 개발 연구에 나서기로 했다.
해외에서는 디지털 치료제가 속속 상용화되고 있다. 2017년 페어테라퓨틱스의 약물중독 치료제 ‘리셋’은 세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리셋은 약물 중독 환자들이 기존 치료 프로그램에 더해 의사의 처방을 받아 사용할 수 있는 12주 치료 프로그램이다. 2018년 3월에는 마약성 진통제 중독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리셋오’, 지난해 3월에는 불면증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솜리스트’로 FDA 승인을 받았다.
아킬리 인터랙티브의 ‘엔더버 Rx’는 2020년 6월에는 FDA 승인을 받았다. ‘엔더버Rx’는 8~12세 소아 주의력 결핍·과잉 행동장애(ADHD)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게임 형태로 만든 디지털 치료제다. 이외에도 미국에선 이미 20개가 넘는 디지털 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고 효능을 입증했다.
시장조사업체 얼라이드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규모는 2020년 25억6346만 달러(3조3892억 원) 규모에서 연 평균 21% 성장해 2027년이면 97억6009만 달러(12조903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디지털 치료제 산업에 주목해 2020년 디지털 치료제 인허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올해 6월 업데이트 가이드라인 제정 등 기반을 다지면서 디지털 치료제 탄생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정식 허가받은 디지털 치료제는 없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내 디지털 치료제의) 해외시장 진출 등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각종 규제와 복잡한 절차 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국내 산업 발전에 큰 장애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치료제는 의약품과 달리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건강보험 수가 적용, 의료기기 인허가 등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디지털 치료제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직 많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