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법무법인 대표가 수습변호사에게 폭언과 부당지시를 했다는 이유로 진정이 제기됐다. 소위 '선배 변호사' 폭언 등에 젊은 변호사가 반기를 든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수습변호사 처우와 권리를 옹호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변협은 이달 내로 '수습 변호사 처우 개선에 관한 TF'를 발족할 계획이다. TF는 수습변호사와 관련한 규정을 만드는 등 제도 개선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수습변호사 근로 현황을 점검한 후 다양한 의견을 모아 권익을 옹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수습변호사는 그간 서면 작성이나 경찰 조사 입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등 제한적인 업무를 수행해왔다. '변호사 생활을 배운다'는 이유로 잡다한 일을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업무 지시와 환경에 노출되는 일도 있었다. 한 2년 차 변호사는 "아무리 수습이라지만 '이러려고 공부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잡일도 많이 했고 지나친 농담도 들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특히 최근 퇴직금 미지급 혐의를 받는 한 법무법인 대표가 수습변호사에게 폭언과 부당지시를 했다는 진정이 접수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진정서에는 해당 법무법인에서 수습변호사로 일했던 A 씨가 2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 겪은 일들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법무법인 대표 B 씨에게 폭언과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A 씨에게 "선생 집안 출신이라 의전도 모른다"며 폭언을 일삼았다. 그뿐만 아니라 A 씨 업무용 PC에서 다른 로펌 지원 서류와 이력서를 발견하고 "네가 다른 회사에 원서를 쓰고 있는 것을 안다. 다 알고 말하는 것이니 솔직히 말하라"고 하거나 자신이 강사로 있는 대학 수업 자료를 만들게 하는 등 법무법인 업무와 관련 없는 지시도 했다.
B 씨는 9월 변호사 수습 기간을 퇴직금 산정 때 제외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지기도 했다. 서울변호사협회도 10월 해당 진정과 관련해 B 씨 징계 개시를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변협은 이 일을 계기로 수습변호사 권리 옹호에 팔을 걷어붙였다. 현행 변호사법에는 수습변호사에 관한 규정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변호사법 제21조 1항에 '6개월 이상 법률 사무에 종사한 경력이 없으면 법무법인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만 있을 뿐 수습변호사 업무 범위나 처우는 법무법인 재량에 맡겨졌다.
한 3년 차 변호사는 "수습변호사 시절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대개 '조금만 참고 넘어가자'며 버티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조계도 좁다 보니 취업 길이 막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데 이제는 젊은 변호사들도 반기를 들기 시작한 거 같다"며 "폭언과 갑질 등을 예방할 수 있도록 변협이 처우 개선이나 업무 범위에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