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포구역은 1937년 소래역이라는 이름으로 소래, 남동, 군자 등의 염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기 위해 개통되었다. 1930년대 후반 화약 원료인 양질의 소금을 이 지역에서 수탈하기 위해 철도를 건설하면서 소래포구의 발전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염전 산업이 점점 쇠퇴하면서 이용객이 줄어들었고 1995년 수인선 영업의 전면 중지를 앞두고 1994년에 폐지되기에 이른다. 인근 소래포구에서 구입한 수산물을 들고 탑승하는 이용객이 많았기 때문에 역사와 열차 안에 가득했던 바다 내음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아있던 소래역. 도로 발달로 역사도 철로도 사라졌지만, 점차 수인선 부활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2012년 6월 30일 수도권 전철인 수인선이 개통되고 옛 소래역 역시 소래포구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소래철교는 시흥과 인천에 걸쳐 있는 수인선 철교로 1937년에 설치되었다. 원래 이름은 수인선 철도를 부설한 경동철도주식회사의 이름을 따서 ‘경동철교(京東鐵橋)‘라 했는데, 흔히 ‘소래철교’라 불렸다. 본래 사람이 이용하지 못하는 철교였지만 한국전쟁으로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기 위해 소래철교에 널판을 깔아 일시적이나마 인도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소래철교 위로 사람이 통행하는 것은 다시 금지되었고 널판도 철거되었지만, 사람들은 일단 익숙해진 철교 통행을 그만두려 하지 않아 사실상 인도교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협궤열차의 운행은 줄었지만 소래포구가 관광지로 유명해짐에 따라 소래철교도 명소로 알려지면서 외지인들의 방문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후 수인선이 폐선되면서 역사적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공원화되어 인도교로 이용되고 있다.
소래포구는 작은 도선장에서 출발, 작업 인부와 소금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정박하면서 활성화됐다. 해방 후에는 실향민들이 모여들어 무동력선 한두 척으로 새우를 잡고 젓갈을 만들어 수인선 열차를 타고 인천, 수원, 부평, 서울 등지로 새벽부터 새우젓을 이고 지고 나가 팔면서 소래 사람들의 삶은 꾸려졌다. 1974년 인천 내항 준공 이후, 새우잡이 소형 어선이 정박 가능한 소래로 포구를 옮기면서 새우 파시로 발전하여 수도권의 대표적인 재래어항이 되었다. 오늘날 서울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주민들이 즐겨 찾는 당일 코스 관광지로 정착한 소래포구는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고 또한 그 아픈 과거가 만들어낸 관광지인 셈이다.
소래포구 어시장 옆에 자리한 소래역사관은 사라져가는 소래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인천광역시 남동구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지난 2012년에 개원하였다. 소래 어촌의 전통 및 생활사, 소래 염전의 유래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옛 소래역사와 수인선 협궤열차를 재현하였다. 역사관 광장에 축소 재현한 협궤열차와 옛 소래역 대합실, 플랫폼을 직접 이용하면서 소래 지역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자료=국가철도공단 ‘한국의 철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