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학교에는 러 선전 교육 흔적 산적
포격 이어지자 온라인으로 피란 학생에 자국 문화 가르쳐
헤르손의 제27 학교 교감 선생님인 해리냐 샤피로 씨는 러시아 치하의 수업을 거부해오다 러시아가 퇴각한 지 4일 후 학교에 복귀해 낯선 학교의 모습에 당황했다. 교실 칠판에는 러시아어가 쓰여 있었고, 학생들의 노트에는 러시아를 찬양하는 시가 넘쳐났다. 교사 업무 책상에는 러시아에서 출판된 러시아 역사와 문학 교과서가 놓여있었다.
샤피로 씨는 “그들은 우크라이나어로 된 우리 책을 모두 없애고 학생들의 세뇌를 시도했다”면서 러시아가 압수한 수백 권의 우크라이나 책은 댄스 수업이 진행되던 교실에 방치돼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이 책을 폐기할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그럴 시간이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0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이제 전쟁은 무력 충돌과 함께 심리전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지난 2월 침공을 시작했을 때부터 점령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대신 러시아 연방의 상징으로 채워나갔다. 실제로 헤르손 점령 후 러시아는 자국 통화인 루블화를 유통하고, 러시아 체제 선전 TV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샤피로 씨가 교감으로 근무한 제27 학교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6월 19일이었다. 학교에 5명 무리의 남자들이 찾아와 교직원 명단을 요구했고, 그중 한 명이 자신이 새로운 교장이라고 밝혔다. 자칭 신임 교장이었던 인물은 학교 급식이나 소풍을 무상화해 우크라이나 통치 때와는 전혀 다른 교육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이후 샤피로 씨는 출근을 거부했고, 8월부터는 헤르손을 비롯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역 학교에서는 러시아의 커리큘럼이 단계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헤르손에서 총 16개의 학교가 전쟁 여파로 파괴됐으며 상당수의 우크라이나어책이 불태워졌다고 밝혔다. 또한, 점령 당시 대부분 교사가 러시아에 협력을 거부했지만, 협력에 응한 교사는 앞으로 교단에 서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샤피로 씨가 지난달 학교로 복귀해 처음 한 일은 학교 입구에 내걸 우크라이나 국기를 사는 일이었다. 복귀의 기쁨도 잠시 그가 학교에 복귀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헤르손 지역에 포격하기 시작했고 이 지역 주민들의 대규모 피란 행렬이 이어졌다. 헤르손 제27학교는 국내외로 흩어진 학교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통해 우크라이나 언어와 문화를 계속 가르치고 있다.
샤피로 씨는 “나는 우리 학교가 다시 문을 열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러시아가 통치했던 학교에 자녀를 등교시킨 부모들이 그들이 사는 지역이 결국 우크라이나인 것을 깨달았으면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