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사안에 표현의 자유=개인의 인격권 보호” 균형 맞춰야
女 연예인, 성적 대상화…‘비하‧혐오’ 표현 인정
“공인 사생활 댓글엔 ‘표현의 자유’ 좁게 적용”
가수 겸 영화배우 수지(28‧본명 배수지)를 향해 ‘국민호텔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모욕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배 씨를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여성 연예인을 비하했기 때문에 모욕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모욕 혐의로 기소된 A(44)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2015년 10월 29일 배 씨 관련 언론 기사에 ‘언플이 만든 거품, 그냥 국민호텔녀’라는 댓글을 달아 배 씨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해 12월 3일에는 ‘영화폭망 퇴물 배 씨를 왜 B(다른 연예인)한테 붙임? 제왑 언플 징하네’라는 댓글을 단 혐의도 받았다.
1심은 ‘거품’, ‘국민호텔녀’, ‘영화폭망’, ‘퇴물’ 등의 표현이 “모욕”이라고 판단, 유죄를 인정해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1심은 피해자가 연예인이고, 인터넷 댓글의 특수성을 감안해도 이러한 표현들이 건전한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2심은 이를 뒤집고 무죄 판결했다. 연예인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대상인 것을 감안하면, 모욕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비연예인과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국민호텔녀라는 표현은 과거 보도된 배 씨의 열애설을 기초로 국민여동생이라는 연예업계의 홍보 문구를 사용해 비꼰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역시 ‘거품’, ‘영화폭망’, ‘퇴물’ 등의 표현은 배 씨의 공적인 영역에 관한 비판을 다소 거칠게 표현했지만,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 부분은 무죄를 선고한 2심 판단이 확정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국민호텔녀’라는 표현과 관련해서 “배 씨의 기존 이미지와 반대의 이미지를 암시하면서 배 씨를 성적 대상화하는 방법으로 비하했다”고 지적했다. 여성 연예인인 배 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멸적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모욕적 표현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새로운 법리를 내놨다.
대법원은 공적 인물이라 해도 사생활이 결부된 사안이라면 표현의 자유 인정 범위를 좁게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공적인 사안에 표현의 자유는 되도록 넓게 보장해야 하는 게 맞기는 하나, 그 자유는 개인의 인격권 보호와 조화 및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명시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