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인터뷰
성역할 변화에 따른 시스템 부재가 저출산 원인
정부 정책, 직접 체감할 수 있어야…적극적인 고민 필요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말로 많은 돈을 썼나, 그리고 정말로 열심히 했던 것인가에 대해선 의문이에요. 그동안 좀 더 효율적으로, 적시 적소에 맞게 예산을 썼어야 했는데 그런 고민은 사실 많이 부족했다고 봐요.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구학 전문가인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근 세종 KDI 연구실에서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연간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세계 최하위 수준이자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1명을 밑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로, 1명 미만의 합계출산율은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아이를 1명도 낳지 않는다는 의미다. 올해엔 2분기(0.75명)에 이어 3분기(0.79명)까지 2개 분기 연속으로 0.7명대 합계출산율을 기록해 연간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슬기 교수는 최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향후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봤다. 최 교수는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81명대인데, 인류 역사상 출산율이 이렇게 급격하게 떨어지는 사례는 국가 단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숫자"라며 "코로나로 인해 합계출산율이 조금 더 떨어지고 있고, 일자리나 소득 등의 요인도 악화되고 있어서 지금보다도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합계출산율이 2.1명 정도는 돼야 현재 인구가 장기적으로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며 "합계출산율이 2.1명 가까이 올라간다면 인구 감소에 따른 변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지금은 상당히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수준으로까지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다른 나라보다도 유독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최 교수는 성역할 변화에 따른 시스템 준비가 미흡했다는 점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제시했다. 그는 "이전까지는 남녀의 역할, 그리고 일터나 가정의 역할 등 영역이 나뉘고 성별 분업을 하는 식으로 살아왔다면,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흐름이 달라졌다"며 "여성이 사회 진출을 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대다수 가정에서 적용되던 남성 1인 부양자 모델도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상황이 달라졌을 때는 이에 대응한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북유럽·미국 등 시스템을 잘 만든 나라는 여성의 취업률도 높고 출산율도 높은 상황을 만들어냈다"며 "반면, 남부 유럽 국가나 일본, 한국 등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나라들은 출산율도 낮고 여성의 경제활동도 낮은 사회로 진입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약 280조 원의 저출산 대응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가파르게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막지는 못했다. 통계청은 코로나19로 인한 혼인감소 등으로 합계출산율이 2024년 0.70명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총인구가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감소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28일 이민정책을 수립하고, 육아휴직 기간과 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종합 대책인 '인구구조 변화 대응 방안'을 내놨다.
최 교수는 그동안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 등의 태그가 붙은 예산으로 돈을 쓴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그게 정말로 저출산 예산이었나, 그리고 제대로 잘 썼던 것인가에 대해선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템플 스테이 등 연관성을 쉽게 생각하기 힘든 사업이 저출산 예산에 포함된 적도 있었고, 경제 취약체에 주거를 지원해주는 것도 관련 태그가 붙어 있었다"며 "일정 부분은 도움이 됐던 것도 있겠지만, 과거 정책은 좀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적시적소에 조금 맞게 예산을 썼어야 했는데 그런 고민은 사실 많이 부족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저출산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까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왔고, 외국에서 좋다고 하는 제도들은 대부분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게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 설계돼야 할 것이냐는 지점이 부족했고, 그러다 보니까 제도는 들어와 있는데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육아휴직'을 예로 들면서 "외국에서는 한국처럼 육아휴직이 잘 만들어진 나라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육아휴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등 차별적인 대우가 일터에서 있는 것도 사실이고, 아무래도 공무원이나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만 활성화돼있어 출산율을 크게 올릴 수 있을 정도로까지 긍정적인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책이 이렇게 조금씩 바뀌면 사람들이 크게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선 그들의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틀이 달라져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는 방식으로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앞으로 어떠한 정책을 추진해야 할까. 최근 정부가 내놓은 이민 정책과 관련해 최 교수는 당장 대규모 이민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충분히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지금 당장 미국이나 호주의 경우처럼 대규모 이민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인다"면서도 "인구 감소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사회에 활력이 떨어지고, 일할 사람도 너무 없다고 한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외국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급여 등 현금성 지원정책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정부가 내년 1월부터 만 0세 아동 양육 가구에 월 70만 원을, 만 1세 아동을 양육하는 가구에 월 35만 원의 부모급여를 지급할 예정이다. 최 교수는 "돈을 주는데 당연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그게 돈을 그런 식으로 쓰는 것이 가장 최선이었을까, 그리고 좀 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평가했다.
이어 "(현금성 지원책은) 긍정적인 효과가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고, 장기적이지도 않은데 돈은 엄청나게 들어간다"며 "사람들의 행동과 의도를 달라지게 할 정도의 규모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돈을 좀 더 효과적으로 썼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캠페인성으로 우리 사회의 출산율이 이렇게 낮고, 젊은 여성들이 어렵더라도 애를 좀 낳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정부가 실제로 해야 하는 역할은 방기하는 것이고,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감만 들 수 있어요. 그런 캠페인성 정책보다는 실질적인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