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주(민) 노동자] 1-2. 주린 배 채우러 떠난...우리도 '그들'이었다
산업현장 지키는 외국인 84만명...고용률은 계속 줄어 ‘인력난 가중’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올스톱 되는 한국경제…지방 소멸 겨우 지탱
‘현대판 노예제’로 전락한 고용허가제…“사업장 변경 허용돼야”
한국정부는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서독)에 약 7900명의 광부를 파견했다. 3년 계약을 맺은 파독 광부는 당시로선 고임금인 월 160달러를 받았다. 1972년 원-달러 환율이 400원 언저리였던 점을 감안하면 약 6만4000원에 해당한다. 당시 은행원의 월급이 3만 원, 일반 근로자의 월급은 몇 천 원 수준이던 시절이다.
파독 간호사들도 1966년부터 10년간 1만 여명이 서독으로 파견됐다. 이들은 서독을 가난과 실업을 극복하기 위한 기회의 땅으로 여기며 지하 막장의 어둠을 뚫고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냈다. 번 돈은 모두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부치고 본인들은 최저 생계비로 버텨냈다.
60년이 지난 지금 ‘파독’의 서사는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국내 이주노동자들을 통해서다. 최근 들어 아시아권에서는 ‘코리안드림’을 좇아 한국에서 일할 기회를 찾으려는 이주노동자들의 대기 열풍이 거세다. 저임금과 일자리 부족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얻을 수 있고, 근면성실한 한국의 사업모델을 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싶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지에선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인 체력검사, 면접, 한국어시험 등에 통과한 후에도 오랜기간 대기하는 일이 허다하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장인 김달성 목사는 “각종 시험을 통과하고도 차례가 오기를 최대 2년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주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을 잘 사는 나라, 일자리 준 걸 감사하다는 정서를 갖고 우리의 60~70년대처럼 가족을 부양하려는 의무감으로 참고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산업계에선 이주노동자들을 취업 비자로 분류한다. E-9, E-7, H-2, F-4 등 알파벳과 숫자로 구분된다. 순서대로 비전문, 전문, 방문취업, 재외동포 등 인력이다. 2022년 통계청 외국인 고용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취업자 수는 84만3000명에 달한다. 여기엔 재외동포(F-4)·영주(F-5)·결혼이민(F-6) 등 취업자가 포함돼 행정안전부의 외국인 노동자 통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불법체류 취업자를 포함하면 외국인 취업자 수는 13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
비자별 근무 현황을 따져보면 재외동포 비자(F-4)가 24만5800명으로 가장 많았다. 비전문 취업비자(E-9) 20만9100명, 방문 취업비자(H-2) 7만1600명, 전문인력(E-1~E-7) 4만800명 순이다. F-4와 H-2 비자를 차지하는 인력들은 중국 동포인 조선족과 고려인이 많았다. E-9 근로자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포함한 제3국 출신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들은 3D 업종으로 인식되는 중소제조업이나 농축산업, 어업, 건설업 등 업종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문제는 갈수록 외국인력의 의존도가 높은 업종들의 인력난이 심해진다는 점이다. 매년 꾸준히 외국인 상주인구와 취업자들이 늘고 있지만 고용률은 줄고 있다. 2012년 기준 69만7900명 이주노동자들의 72.4%가 취업을 했지만 매년 갈수록 줄어들어 2022년 기준 이주노동자 고용률은 64.8%로 감소했다. 비자를 받았지만 체류만 하지 산업현장에 제대로 투입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상황임에도 외국인 쿼터제 유지와 주 52시간 근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각종 악재들이 터지면서 인력난은 가속화됐다. 결국 지난해 11월 기준 기업들이 채우지 못한 빈 일자리 수는 20만8000개 수준으로 꾸준히 20만 개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빈 일자리 발생 사업체는 주로 300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영세한 중소기업 등에 빈 일자리가 몰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영세한 중소기업과 농어촌의 극심한 인력난이 남았다. 한국의 경제 구조가 이주노동자에게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국내 발발 두 달 만인 2020년 4월 취업 활동이 끝나가는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취업기간을 50일 연장했다. 각국으로의 입국이 막히면서 새로 일해야 할 노동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 각 사업장에 비상이 걸린 탓이었다.
이후 코로나19 투쟁기를 돌이켜보면 당시 50일 연장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2020년 5만5000명이 입국 예정이었던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고작 6600여 명 만 들어올 수 있었다. 정부는 이듬해 부랴부랴 비전문취업(E-9)과 방문취업(H-2) 비자를 가진 약 7만명 이상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1년간 비자를 연장하는 조치를 내놨다. 그럼에도 부족한 인력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지난해 E-9 이주노동자는 20만9100명으로 코로나19 발발 이전인 2019년 대비 6만6900명 줄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 저출산·인구이동으로 인한 ‘지방 소멸’의 두가지 문제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2019년 기준 전체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7.5%로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10.9%, 독일 19.1%, 일본 20.7%, 프랑스 9.8%, 영국 8.7%와 대조된다.
지방소멸은 예견된 수순을 밟고 있다. 특히 저출산에 더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 지역으로 떠나는 지역간 인구 유출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전국 228개 시·군·구의 인구 변화를 조사한 결과 지방소멸 위험도가 높은 소멸위기 지역은 총 59곳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소멸우려지역에는 경기 가평군과 연천군, 인천 강화군 같은 수도권 지역도 3곳이나 포함됐다.
내국인 노동자가 떠난 자리는 이주노동자가 채우고 있다. 특히 농어촌 지역민들은 이주노동자 없이는 더이상 생계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곳이 많다. 공장과 농촌 이주노동자가 많은 경기도 포천시의 경우 14만명 대의 인구 중 약 2만여명 가량이 이주노동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인력난을 타계하기 위해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1만명의 이주노동자 입국을 허용키로 한 상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과 이를 제약하는 제도적, 문화적 토양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선 이주노동자 확대정책이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12월 20일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NUON Sokkheng) 씨가 숨을 거뒀다. 경기도 포천시의 난방이 되지 않는 농장 비닐 하우스 숙소에서 영하 18도의 강추위를 버티다 생을 마감했다. 이주노동 활동가들은 속헹씨 사망의 근본 원인으로 고용허가제를 지목하고 있다. 2004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에 따라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농·축산업과 어업 사업자는 내국인을 고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서류를 제출해 입증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 노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사업장 변경 권한이 사업주에게 맡겨진 점이 이주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을 악화시키는 주 요인으로 꼽힌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으면 사업주의 동의를 얻거나, 사업주의 계약 위반 사항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사실상 일자리를 옮기거나 재고용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영섭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은 “고용허가제는 사업장을 자의로 변경할 수 없도록 한 만큼 우리나라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상 강제노동일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줘서 낸 보고서도 같은 결론”이라고 전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재고용까지 포함해 최대 9년 8개월까지 한국에서 일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는다. 때문에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몸이 아파도 참는 일이 다반사다. 조영관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임금체불 상태라 고용노동부에 신고해도 입증하기 어려워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조적인 부분이 있다”며 “같은 사업장 내에서 일해도 위험한 일을 외국인에게 시키는 경우가 많아 산재율도 더 높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