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지난해 국내 증시가 암울한 성적을 거두자 증권가에선 어김없이 이 단어가 튀어나왔다. 2022년 코스피지수의 성적은 주요 20국(G20)을 대표하는 주가지수들 가운데 19위. 전쟁에 허덕이는 20위 러시아를 제외하면 가장 저조했다. 10년간의 호황기 이후 글로벌 긴축 기조가 증시를 엄습한 건 모든 국가가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상장기업 가치가 다른 국가 대비 전반적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들어맞은 셈이다.
지난해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1년까지 45개국 3만2428개 상장기업(초소형주 및 완전자본잠식기업 제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 상장기업은 한국 상장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선진국의 52%로 집계됐다. 외국 상장기업에 비해 PBR이 현저히 낮은 셈이다. 신흥국과 비교해선 58%, 아시아태평양 국가과 대비해서도 69% 수준에 불과했다.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에 대해선 고질적으로 꼽는 요인들이 존재한다. △취약한 기업지배구조(지배주주의 사적이익 추구, 소액주주보호 취약) △낮은 배당(주주 환원) △회계 불투명성 △단기투자성향 △높은 변동성에 따른 위험 프리미엄 상승 △대북관계 불확실성 등 지정학적 위험 등이다.
실제로 김 선임연구원이 회귀분석으로 코리아디스카운트 요인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주주환원비율은 45개국 중 가장 낮았다. 결정요인별 비중으로는 주주환원이 43%로 가장 많았고, 이어 재무적특성 36%, 기업지배구조(소액주주보호) 14%, 거시경제 6% 순으로 파악됐다.
김 선임연구원은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은 최저 수준의 주주환원율, 낮은 수익성과 성장성, 기업지배구조(소액주주보호) 취약성, 회계투명성 부족과 낮은 기관투자자 비중 등 복합적”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시장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적인 규제도 증시의 걸림돌이 되는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 이후 강화된 금융상품 관련 규제로 신상품 출시가 극도로 위축된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이 매번 지적되는 고질적 요인의 개선 등 실천에 달려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 선임연구원은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요인들은 모두가 알고 있고 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과 대주주들 또한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큰 이슈로 자리매김했던 대기업들의 잇따른 물적 분할 등으로 모회사 주식가치가 희석되는 ‘더블카운팅(중복 계산)’ 이슈가 소액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외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지배주주 관련 기업과의 영업 거래를 규모에 관계없이 전부 공시하도록 하고, 상장 심사 시 질적 심사 요건 충족 여부를 매년 정기적으로 재평가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증시가 외국인도 탐낼 만한 매력적인 투자처로 거듭나기 위해서 기초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또 이 과정에서 주주 환원도 적절히 이뤄져야 퀀텀 점프를 꾀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KB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은 우리나라에서 87억2100만 달러(약 11조 원)의 주식을 순매도한 반면 중국에선 131억4200만 달러(약 16조6000억 원) 순매수했다. 지난해 10~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으로 외국 자금이 중국 증시를 이탈하는 ‘차이나런’이 벌어졌다. 하지만 지난달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완화하면서 중국 경제가 본격적인 정상 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매수세가 몰린 것이다.
지난해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판 종목은 삼성전자(8조7148억 원)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시장이 침체 국면에 들어선 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가 흔들리자 전체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매도세가 거세지면서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이탈한 것이다.
이에 이경수 메리츠증권 센터장은 “(산업이 편중되면 우리 증시가) 반도체 업종에 휘둘릴 수 있어 산업 구성이 개선되면 좋다”고 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처럼 특정 기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다. 다만 산업 비중의 편중을 정부가 나서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산업, 성장하는 산업이 나와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준혁 서울대학교 교수는 “결국 펀더멘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기업들은) 일반 투자자에 대한 보호 메커니즘의 작동이 덜 효율적이다”라고 분석했다. 2021년 미국과 영국의 배당 성향(배당금/당기순이익)은 각각 37.27, 48.23이었으나 우리나라는 19.14였다.
연기금, 금융투자업계의 자산운용 역량에 대한 신뢰감 쌓기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안정적인 1금융권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할 수 있고, 가상자산 등 아직 비제도권인 투자 영역보다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금융투자를 향한 신뢰·기대감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의 최근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은 대부분 마이너스(-)다. 작년 10월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수익률은 -20.45%, 채권은 -8.21%다.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이하 직접투자, 2021년 말 기준)은 주식에서는 순서대로 4.11%, 5.08%를 기록했으나, 채권에서는 -1.18%, -1.19%에 그쳤다.
연기금의 수익률 부진은 글로벌 경기 불황 영향이 크다. 로이터통신은 시장조사업체 글로벌SWF은 연기금은 22조1000억 달러에서 20조8000억 달러로 줄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증권업계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올해 증권업계를 전망하면서 “주식 및 채권운용에도 불확실성 높은 환경이 지속되고 있고 파생결합증권 조기상환도 줄어들면서 관련 수익이 감소하는 등 수익 창출을 위한 산업환경이 부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전문가는 국내 연기금, 금융투자업계의 자산운용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단기적 성과보다 중장기적 성과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정훈 건국대 교수(한국증권학회장)는 “세계적으로 과잉 유동성이었다가 지금은 급격하게 긴축 정책으로 돌아섰다.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이나 자본시장은 펀딩 유동성(Liquidity)이 굉장히 중요한데, 유동성이 고갈된 상태에서 시장이 단기적으로 좋아지기는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해 나가면, 경기 상황이 좋아질 때 회복 속도가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선 교수는 금융투자업계가 위기일수록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리서치센터는 존속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선 교수는 “시장이 안 좋아지다 보니까 리서치센터를 많이 축소했는데 그 부분은 아쉬웠다”며 “시장 상황이이 안 좋을 때 리서치센터를 통해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정보를 모으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