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 판결 규탄” vs 한의계 “현대 의료기기 사용 원년 만들 것”
지난해 12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가운데, 의료계와 한의계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울산광역시의사회, 충청남도의사회, 경상북도의사회 등등 지역의사회와 대한재활의학회, 대한피부과학회 등에서 대법원의 한의사 초음파 진단 판결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의협은 “부인과 증상을 호소하던 여성 환자에게 초음파 기기를 사용해 2년여간 68회에 걸쳐 장기간 과잉진료를 했지만,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쳐 환자에게 명백한 피해를 줬다”며 “대법원이 불법을 저지른 한의사를 엄벌하기는커녕 ‘한의사가 한방의료행위를 하면서 그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라는 무책임한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의협은 “의료인은 각 면허된 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의료법에 적시돼 있다”며 “‘초음파 진단기기를 통한 진단’은 영상 현출과 판독이 일체화돼 검사자의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가 필요하다. 잘못 사용할 경우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피부과학회는 “대법원이 무책임하게 보건위생상 위해만 없다면 의료인은 직역과 관계없이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우를 범했다”며 “이번 사안의 본질은 한의사가 본연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는데도 자궁내막암 2기를 진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음파 장비 자체의 위험도는 낮으니 누가 쓰든 상관없다는 식의 결과만 남긴 이번 판결은 앞으로 수많은 오진의 가능성을 남발하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재할의학회는 “이번 판결은 초음파를 포함한 전 의료영역에서 한의사의 의과영역 침범을 가속하는 판례가 될 수 있다”며 “기존에 모순이 있지만, 이원화된 체계로 유지돼 온 건강보험 진료체계에 붕괴가 올 것이 자명하다. 또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 한의사의 초음파 검사행위는 의료법상 한의사에게 면허된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는 의협과 함께 연대 성명서를 통해 “의학과 한의학은 학문적 원리가 다르고 질병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에 있어서의 접근법 또한 전혀 다른 학문”이라며 “이번 판결은 의과의 전문영역인 초음파 진단을 확인도 증명도 되지 않은 방식의 보조적 사용도 괜찮다고 폄훼한 것이다. 이번 판결에 심각한 유감을 표하며 앞으로 야기될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의회는 오롯이 대법원에 있음을 천명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 각 직역 대표자들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한의사 초음파 사용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항의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로 했다. 앞서 이필수 의협 회장은 지난달 26일 대법원 판결에 반대한다며 삭발까지 감행했다.
반면, 한의계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2023년을 한의사 현대 진단기기 사용 원년의 해로 만들 계획이다.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은 2일 시무식에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한의사의 현대 진단기기 활용의 길이 열린 만큼 국민에게 최상의 한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새해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제반여건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 나가자”고 말했다.
한의협은 의료계의 주장이 악의적인 폄훼와 왜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의협은 4일 설명자료를 통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은 합법’이라는 내용 이외의 다른 부가적인 판결이나 결정은 전혀 없다”며 “‘오진’ 운운하면서 마치 한의사들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진료에 활용하면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크나큰 위해라도 끼칠 듯이 기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초음파 오진사례’를 검색하면 의사들의 초음파 오진으로 인한 의료사고 및 의료분쟁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며 “이러한 현실에도 한의사의 오진이 우려스럽다는 ‘내로남불’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의사들은 한의대에서는 물론 한의사가 된 후에도 충분한 초음파 실습과 교육을 받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은 인류에 이롭게 활용될 수 있다면 누구든 사용에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의사들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활성화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파기환송심이 남아있지만, 해당 재판에서 동일한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환자에게 검사료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에 등재되기 위해선 안전성, 경제성, 급여 적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거쳐야 한다.